그나마 버티던 日도 흔들… ‘위기 확대 재생산’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0월 29일 03시 02분



■ ‘엔고 유령’ 변수에 각국 촉각

日 수출 경쟁력 악화시켜… 경기침체 깊어질 가능성
각국, 투자됐던 ‘엔 캐리’자금 빠지며 금융 - 실물 위축
G7 인위적 개입도 쉽지않아… ‘달러당 90엔’이 분수령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엔화 강세’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행될수록 엔고(高) 현상이 심화되고, 계속되는 엔화 강세는 일본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

상대적으로 안전한 ‘피난처’로 돈이 몰리는 현상이 일본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안정성을 유지하던 일본 경제의 추락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 해외로 풀렸던 일본 자금의 귀환

최근 각국 금융회사들이 달러 부족에 허덕이며 달러 자금을 매집하는 바람에 달러화는 세계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 대비 유로화, 한국 원화 등의 가치는 일제히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엔화는 ‘나 홀로 강세’다. 금융위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일본의 엔화가 ‘안전 통화’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선진국, 신흥시장 가릴 것 없이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엔 캐리 자금’의 청산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 엔 캐리 자금이란 낮은 금리로 일본에서 빌려 해외에 투자됐던 돈. 선진국, 신흥국 가릴 것 없이 이뤄지던 엔 캐리 거래가 이번에는 역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중순 미국의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유동성 불안이 가중되자 엔 캐리 자금의 청산 속도는 더 빨라졌다.

이 자금이 빠져나가면 해당국의 자산가치 폭락은 피하기 힘들다. 투자도 위축된다. 실물 및 금융 부문에서 충격이 오는 것이다.

○ 일본 수출기업 악화, 일본 경기 침체

수출에 의존해 온 일본의 주요 기업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전자업체인 소니가 23일 2008년 4월에서 2009년 3월까지 영업이익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58% 줄어든 2000억 엔에 그칠 전망이라고 발표했으며, 28일에는 캐논이 올해 영업이익 전망을 23% 낮췄다.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달러 대비 엔이 1엔 올라가면 수익이 3억6800만 달러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를로스 곤 닛산자동차 사장은 한 비즈니스 포럼에서 “지금의 엔고는 비현실적 상황”이라며 “외환시장이 이 상태로 유지된다면 일본 기업은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경제에는 긍정적인 효과가 부정적인 결과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가전 등 일본과 수출 경쟁을 하는 업계는 일본에 대해 가격경쟁력이 높아진다. 하지만 부품 및 원자재의 상당 부분을 일본시장에 의존해 온 제조업체는 원가 부담이 커지게 된다. 상반기까지 고유가에 허덕이다 금융위기의 여파로 국제유가가 떨어지면서 숨을 돌리려던 대일(對日) 원자재 의존 기업으로선 또 다른 도전이다.

○ 앞으로도 ‘산 넘어 산’

27일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총재는 ‘과도한 엔고를 우려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1985년 ‘플라자 합의’처럼 인위적인 환율 개입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요미우리신문은 28일 G7 성명에 대해 “일본 미국 유럽 각국이 실질적으로 엔고에 대응해 협조하는 게 어렵다는 점을 시장이 이미 꿰뚫어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달러는 엔보다 하락했지만 유로보다는 상승하는 등 각국 화폐의 상대적인 환율 변화가 엇갈려 개입의 방법 폭 시기 등을 놓고 의견을 모으기 어렵다. 유럽은 달러화에 비해 유로화 가치가 하락한 것을 반기고 있는 산업계가 통화 개입에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 신문은 또 일본이 단독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이 과거 경험했던 1985년, 1995년의 급격한 엔고는 그 자체가 선진국의 금융 개입 결과였고, 주역은 달러였다. 하지만 이번은 세계적 금융위기의 여파로 엔화가 강세를 보이는 등 상황이 다르다는 것.

이런 점 때문에 일본 정부가 개입해 엔화 강세를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는 있어도 추세 자체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일반적 전망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달러당 90엔’을 심리적 지지선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이 금리를 추가 인하할 경우 엔고 압력이 가중돼 달러당 85엔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시각도 만만찮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