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쇼크’ 후폭풍]증시 열자마자 외국인 투매…

  • 입력 2008년 9월 17일 02시 55분


쳐다보기도 두려워…미국발 금융위기로 주가가 폭락한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 증권사 객장에서 개인 투자자가 온통 파란색으로 물든 시세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홍진환 기자
쳐다보기도 두려워…
미국발 금융위기로 주가가 폭락한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 증권사 객장에서 개인 투자자가 온통 파란색으로 물든 시세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홍진환 기자
1400선 맥없이 무너져

외국인, 주식 6039억원 순매도에 개미들도 “팔자”나서

외환시장 직격탄… 장중 1달러 1166.20원까지 치솟아

외평채 가산금리 5일새 0.3%P↑… 채권발행 잇단 연기

“(원금이) 다 까졌는데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속 끓이지 마시고 그냥 내버려 두세요.”

증시가 폭락한 16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의 한 증권사 객장에 나온 정모(45·서울 마포구 아현동) 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긴 한숨만 내쉬었다.

16일은 한국 금융시장에 하루 종일 검은 비가 내린 화요일이었다.

주가가 폭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다. 이른바 ‘9월 위기설’이 소멸한 후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던 금융시장은 다시 혼돈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국내 증시가 상반기에 계속 조정을 받아 온 데다 이번 악재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어서 시장 분위기가 ‘극도의 패닉(심리적 공황)’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 한숨과 공포가 지배한 하루

15일 하루 쉬었던 한국 증시는 16일 개장하자마자 미국발(發) 태풍에 요동치기 시작했다. 코스피는 오전 9시 개장하자마자 수직 낙하하듯 폭락해 1,400 선이 곧바로 붕괴됐다.

자금 마련이 시급한 외국인 투자가는 이날 장이 시작되자마자 주식을 팔기 시작해 코스피시장에서 6039억 원어치를 순매도(매도액에서 매입액을 뺀 것)했다. 올 6월 12일 이후 가장 큰 순매도 규모.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외국인들의 다급한 처지를 엿볼 수 있다.

리먼브러더스나 메릴린치가 지분을 보유한 국내 중소기업들도 유탄을 맞았다. 이 투자은행들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투자금 회수에 나서게 되면 이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에 처할 우려가 나온 것.

이 때문에 이날 증시에서 리먼브러더스가 전환사채(CB)를 인수한 엘림에듀가 14.85% 하락한 것을 비롯해 단성일렉트론 ―14.86%, 이앤이시스템 ―14.94%, 바이오매스코 ―14.78%, 트라이콤 ―15.00%, 나노캠텍 ―7.36% 등으로 떨어졌다.

개인투자자는 소액 투자자를 중심으로 투매가 줄을 이었지만 증권사 창구는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다.

우리투자증권 신사동지점 관계자는 “최근 미국발 악재(惡材)로 인한 경험이 누적돼서인지 고객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며 “한국 기업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한 증시가 다시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는 고객도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외환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장이 열리자 달러 사자 주문이 밀려들면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전 거래일보다 50.90원 급등하며 116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외환시장의 반응이 지나치다”는 정부의 구두개입과 스무딩오퍼레이션(미세조정)에도 환율 급등세가 멈추지 않으면서 이날 하루 상승폭이 외환위기 이후(1998년 8월 6일 70.0원) 최대치까지 뛰어올랐다. 장중 한때 1166.20원으로 치솟기도 했다.

외환시장은 달러 사자 주문과 치솟는 환율로 하루 종일 ‘패닉 상태’였다. 한 시중은행 외환 딜러는 “‘울고 싶은데 뺨을 맞은 격”이라며 “가뜩이나 달러 수요가 많은 상황에서 리먼브러더스 파산 신청 등의 악재가 터지면서 너도나도 달러 사자 주문을 내는 강한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고 이날 분위기를 전했다.

○ 외화자금 조달 차질 우려

국내 금융기관 및 기업들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신용경색이 가속되면서 단기적으로 외화 자금을 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중장기 자금을 조달할 때 가산금리가 크게 상승해 해외 공모채 발행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가산금리(5년물)는 10일 1.80%포인트에서 15일 2.10%포인트로 급등했다. 가산금리가 오르면 투자자들이 평가하는 부도 위험이 높아졌다는 뜻으로 채권 발행이 어려워진다.

당초 정부의 외평채 발행 이후에 해외채권 발행에 나서기로 한 한국산업은행은 이번 주 발행 예정이었던 1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본드 발행을 연기했다. 산은 관계자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본드 발행 시점을 연기했지만 국제 금융시장이 회복되는 대로 채권 발행을 하겠다”고 말했다.

산은뿐 아니라 가스요금 보전용 운전자금 마련을 위한 한국가스공사의 5억 달러 규모 외화채권, 우리은행의 채권 발행 일정도 연기된 상태다.

시중은행들도 외화 유동성 비율을 현 수준에서 유지하기 위해 외화대출 규모를 줄이는 등의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리먼브러더스 외에 AIG의 유동성 위기로 이머징 시장에 대한 매력이 더욱 줄어들면 단기적으로 외평채 가산금리가 더 높아질 수 있다”며 “가산금리가 오르면 가뜩이나 어려운 달러 해외 차입이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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