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큰 ‘개척’ 비용…세월이 약?

  • 입력 2008년 6월 23일 02시 57분


“베트남 증시가 이 정도로 망가질 줄은 솔직히 몰랐습니다.”

한국금융지주의 한 관계자는 최근 이렇게 털어놨다. 2006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베트남 펀드를 만든 이 회사는 이후 ‘베트남 펀드 돌풍’을 주도했다. 하지만 최근 베트남 증시가 지난해 최고점 대비 70% 가까이 폭락하자 회사 내부에 비상이 걸렸다.

2005년 중국 시장을 앞장서 개척했던 미래에셋금융그룹 역시 중국 증시 급락으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언젠가 살아날 것”이라고 회사 측은 강조하고 있지만 워낙 하락폭이 크다 보니 시장의 반응은 반신반의다.

한국 펀드업계에서 앞장서 해외시장을 개척한 자산운용사들이 ‘선구자 프리미엄’의 비용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 스포트라이트 뒤 추락 또 추락

미래에셋금융그룹과 한국금융지주는 중국, 베트남 펀드를 국내에서 처음 내놓아 대규모 자금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성공은 이후 다른 금융회사들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설 때의 벤치마크가 됐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중국 펀드 순자산은 지난해 11월 초 8조9265억 원까지 급등했다. 미래에셋차이나솔로몬펀드가 ‘미차솔’이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미래에셋이 주도한 중국 펀드의 열풍은 뜨거웠다. ‘리틀 차이나인 베트남에 투자하세요’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한국투신운용의 베트남 펀드 순자산도 지난해 10월 6082억 원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상황은 급변했다. 중국과 베트남 증시는 이후 추락을 거듭했다.

중국 펀드가 주로 투자하는 홍콩H지수는 지난해 11월 1일 장중 20,609.10까지 올랐지만 이달 20일 12,343.54로 마감했다. 베트남VN지수는 지난해 3월 12일 장중 1,170.67까지 치솟았지만 이달 20일 366.02로 거래를 마쳤다.

○ “특정 국가 다걸기의 위험성 고려해야”

한국금융지주와 미래에셋금융그룹 측은 초기 진출과정에서 무리한 점은 없었다는 설명이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의 한 관계자는 “2003년 12월 홍콩법인을 설립해 2005년 10월 중국 펀드를 내놓았기 때문에 준비 기간은 충분했다”고 말했다.

한국금융지주는 1990년대부터 베트남과 교류해 오다 2005년 6월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해 2006년 3월 베트남 펀드를 만들었다. 한국금융지주의 한 관계자는 “처음에 투자자를 모집할 때는 금액에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펀드를 설정한 후에는 분기별 투자한도를 1500만 원으로 정했고 다시 이를 300만 원으로 낮춰 이른바 ‘다걸기 투자’를 막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단일 국가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성을 알게 됐다”며 해외펀드를 만들 때 여러 국가에 분산투자하도록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 “얼마나 알고 나가나”

펀드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회사들이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 성장하기 위해 해외 진출은 필수적인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미래에셋과 한국금융지주의 도전과 그 뒤를 잇는 증권사들의 해외 진출은 충분한 의미가 있으며, 섣불리 성패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해당 국가에 대한 연구가 사전에 얼마나 충분히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증권사의 리스크관리 전문가는 “해외시장에 진출하려면 최소한 2년 이상 사업의 타당성을 면밀히 조사해야 하는데, 국내 금융회사들은 해외시장 분석 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너무 빨리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의 리스크관리 전문가도 “해외에 나갈 때는 그 국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성을 충분히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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