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국유학생 ‘H-1B’ 노이로제

  • 입력 2008년 3월 12일 02시 59분


한해 6만5000개 배정… 대부분 인도계가 싹쓸이

취득 못하면 불법체류자… 할수없이 대학원 진학도

"전문직 취업 비자(H-1B) 따기가 하도 어려워 못 받을 경우에 대비해 대학원을 다시 한번 다니거나 소액투자 비자를 신청하는 것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에 유학중인 김세현 씨는 다음달 1일로 예정된 H-1B 비자 신청을 앞두고 변호사 사무실을 드나들며 초조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H-1B 비자 신청이 좌절될 경우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수 있어 여러 대안을 강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선배들 가운데는 유학생 신분 유지를 위해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다시 진학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해마다 H-1B 비자 신청 시즌이 되면 미국 내 한국인 유학생들은 몸살을 앓는다.

지난해의 경우 신청 접수 첫날 학사용 비자 쿼터(전 세계 대상 6만5000개)의 두 배가 넘는 15만 건이 접수됐다. 이틀째부터 접수된 서류는 반송 처리됐다.

미 연방이민귀화국(USCIS)은 올해도 이 같은 현상이 되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비자신청을 접수해서 '당첨'되기도 어렵지만 그에 앞서 '스폰서 업체(고용주)'를 구하는 과정도 고역이다. 고용주가 '내국인(미국인) 가운데서는 이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줘야 한다. 막상 그런 고용주를 찾았다해도 임금이나 근로조건 협상에서 한풀 꺾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유학생들은 그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한국이 별도의 쿼터를 배정받는 방안이 이뤄지기를 갈망해왔지만 진전이 없다.

정부는 지난해 6월 미국 측의 요구로 FTA 추가 협상에 응하면서 그에 상응해 우리가 받아낼 몫으로 전문직 취업 비자 쿼터 배정 문제를 거론해 유학생들의 기대를 부풀게 했다.

그러나 10일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쇠고기 수입 개방, 한미 양국의 정치 일정 등에 걸려 FTA 비준 전망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여서 H-1B 쿼터 배정을 위한 협상은 시작도 못했다.

미국은 2004년 1월 발효된 싱가포르와의 FTA까지는 전문직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상대국에 별도의 쿼터를 배정해 줬다. 싱가포르는 5400개를 받았고 호주는 FTA 체결 후 별도 입법으로 더 조건이 좋은 E3 비자 1만500개를 받았다.

그러나 비자에 관한 결정권한을 가진 미 의회의 문제제기로 이제 공식적으로 FTA와 비자 쿼터는 별개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한편 경제전문 주간지인 비즈니스위크가 최근 미 이민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H-1 B 비자의 상당수를 인도 관련 회사들이 차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도 벵갈루루에 본부를 둔 인포시스 테크놀로지 사가 4559개를 받은 것을 비롯해 비자 배정 수 상위 10개 회사 중 8개가 인도 소재 기업이었다.

이는 미국 내 하이테크 전문직 인력 부족을 해소하고 경쟁을 촉진한다는 제도 취지와 달리 H-1B 비자의 상당수가 인도인들을 미국에 데려와서 직업훈련을 시킨 뒤 다시 인도로 보내 미국내 일자리를 아웃소싱하는데 사용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척 그래슬리(공화·아이오와) 상원의원 등은 "H-1B 비자 프로그램이 원래 취지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H-1B:

미국 내 사업자가 ‘특별한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자리에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취업비자. 체류 기간은 3년이며 6년까지 연장 가능하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연간 쿼터는 6만5000개. 미국 대학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를 대상으로 2만 개가 추가로 배정된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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