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B, 부양책 약발 없자 ‘깜짝 카드’ 꺼내

  • 입력 2008년 1월 23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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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폭 평소의 3배… 예정보다 일주일정도 빨리 결정

시장은 일단 긍정적… FRB, 다음주 추가 인하 시사

22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하 조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전격적이다.

첫째, 금리인하의 폭이다. FRB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어 0.75%포인트를 전격 인하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인하 시기도 월가가 예상하지 못했다. FRB는 29, 30일 금리인하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금리를 내릴 예정이었으나 22일 오전 뉴욕 증시가 열리기 전에 임시 FOMC를 열어 금리인하를 결정했다. FRB가 임시 FOMC를 열어 예정보다 앞당겨 금리를 인하한 것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21일 저녁 전화회의를 통해 금리인하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 FRB, 전격 금리인하한 이유

FRB가 인하 폭과 시기 등에 있어 전격적으로 금리인하 조치를 단행한 직접적인 이유는 최근 아시아와 유럽 등 전 세계 증시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FRB는 금리인하를 발표하면서 그 이유로 ‘악화되고 있는 경제성장 전망’을 들었다. 미국 경기는 지난해 이후 ‘주택시장 침체→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신용 경색→소비 침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여기에 씨티그룹과 메릴린치 등 월가를 대표하는 금융회사들이 사상 최악의 실적을 발표하면서 증시 역시 최악의 실적을 나타냈다.

FRB는 국제유가의 고공행진 등 인플레이션 우려에도 불구하고 ‘금리인하’라는 정책 수단을 통해 미국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FRB의 조기 금리인하 선택은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보내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그동안 월가 일각에선 버냉키 의장에 대해 “너무 학구적이어서 시장 상황에 빨리 대응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버냉키 의장은 이번 조기 금리인하 조치를 통해 “FRB가 경기 침체를 절대로 앉아서 지켜보지만은 않겠다”는 의지를 시장에 보여주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 비관론 여전히 우세

FRB의 금리인하 발표 이후 하락세를 보이던 유럽 증시도 일제히 반등세로 돌아섰다. 독일 DAX지수는 오전 장에서 2.67% 하락했다. 그러나 미국 금리인하 소식이 전해진 뒤 DAX지수는 오르기 시작해 오후 2시 32분(현지 시간) 현재 14.87포인트(0.22%) 상승했다.

프랑스 CAC40지수도 오전 장에서 1.18% 떨어졌으나 같은 시간 21.98포인트(0.46%) 상승했다. 영국 FTSE100지수는 전날 폭락에 대한 반발 매수세가 몰려 오후 1시 32분 현재 35.50포인트(0.64%) 올랐다. 남미의 최대 경제국인 브라질도 미국의 금리인하 소식이 전해진 후 급격한 반등세를 보였다.

뉴욕증시는 금리인하 조치에도 불구하고 폭락세로 거래를 시작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RBS그리니치캐피털의 이언 린젠 애널리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FRB가 시장 상황에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명백한 신호”라고 환영했다. 그동안 버냉키 의장을 강하게 비판해온 전문가들도 “늦었지만 FRB가 이제야 시장 상황을 정확하게 보기 시작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FRB의 금리인하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경기 침체를 벗어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관론이 우세한 편이다. 금리를 내린다고 미국 경제를 강하게 짓눌러온 악재들이 한꺼번에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의 고질병 중 하나인 서브 프라임 모기지 문제도 ‘손실이 정확히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시장은 이 같은 불확실성을 무엇보다 싫어한다.

○소비심리 회복이 열쇠

그동안 지칠 줄 모르던 미국인의 소비가 꺾인 것도 좋지 않은 소식이다. 소비는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그런데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주요 백화점들의 매출이 일제히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경제의 주축인 고용도 주택경기 침체의 영향을 받아 차츰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전 세계 주식시장 폭락 사태가 구체적인 ‘숫자’ 못지않게 투자자들의 ‘공포 심리’에 좌우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FRB의 금리인하 조치는 투자 심리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FRB는 이날 성명을 통해 “금융시장과 다른 상황들이 경제 전망에 주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분석해 신용 경색과 경기 침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시의적절하게 취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29, 30일로 예정된 FOMC 정례회의에서 금리를 추가 인하할 수도 있음을 암시한 대목이다.

베어스턴스는 “시장에서는 추가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FRB는 시장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할 것이므로 시장 상황에 따라 금리를 0.5%포인트 추가로 내릴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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