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쌍둥이, 실험도구로 ‘35년 생이별’

  • 입력 2007년 10월 3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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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관찰 대상으로 각각 다른 집으로 입양돼 자란 일란성 쌍둥이 자매 폴라 번스타인 씨(왼쪽)와 엘리스 셰인 씨의 2004년 재회 뒤의 모습. 사진 출처 랜덤하우스 발간 ‘일란성 타인’]
실험관찰 대상으로 각각 다른 집으로 입양돼 자란 일란성 쌍둥이 자매 폴라 번스타인 씨(왼쪽)와 엘리스 셰인 씨의 2004년 재회 뒤의 모습. 사진 출처 랜덤하우스 발간 ‘일란성 타인’]
최근 미국에서는 본인과 그를 입양한 부모도 모르는 가운데 연구 관찰의 대상이 됐던 일란성 쌍둥이들의 사연이 공개됐다. 태어나자마자 각각 다른 집으로 입양돼 ‘사람의 인성 형성에 유전과 환경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를 알고 싶어 하는 과학자들의 관찰 대상이 됐던 것.

여류 저술가이자 영화감독인 엘리스 셰인 씨는 35세 때인 2004년 자신의 생모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생모는 이미 30여 년 전 사망했고 입양기관 관계자는 “당신에겐 일란성 쌍둥이 자매가 있었다”고 귀띔해 줬다.

뉴욕에 사는 쌍둥이 자매 폴라 번스타인 씨에게 연락이 닿았다. 35년 만에 만난 쌍둥이는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며 부정할 수 없는 서로의 공통점을 확인했다. 둘 다 어릴 때부터 프랑스 파리 여행을 꿈꾸다 마침내 꿈을 이뤘고, 고교 때는 학교신문 편집을 했으며 대학에선 영화를 전공했고, 지금은 글을 쓰고 있다는 것.

자매가 알게 된 더 놀라운 사실은 자신들이 ‘유전 대 환경’의 실험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1960년대 후반 저명한 아동심리학자인 피터 노이바워 박사가 주도하는 연구팀은 입양기관에 맡겨진 6쌍 13명(세 쌍둥이 포함)의 쌍둥이들을 일부러 각각 다른 집으로 입양시켰다. 입양한 부모들도 이를 몰랐다. 과학자들은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담은 사진과 지능발달 기록 등을 수시로 얻어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매는 노이바워 박사를 찾아갔다. 몇 차례의 거절 끝에 자신의 발언을 녹음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면담 요청에 응한 노이바워 박사는 1980년에 연구를 중단했으며 연구 결과는 예일대 자료실에 2066년까지 밀봉된 채 보관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험이 중단된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뉴욕 주는 1981년 입양기관들에 쌍둥이 분리 입양 자제를 요구했다.

노이바워 박사는 “당시 과학자들은 쌍둥이라고 똑같은 옷을 입히는 식으로 키우는 것보다 따로 키우는 게 아이들에게 더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고 주장했다고 자매는 전했다.

이들 자매가 기대했던 사과나 후회의 표명은 없었다. 자매는 이런 사연을 담은 책 ‘일란성 타인’(Identical Strangers·랜덤하우스)을 최근 펴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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