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탈 연구 도움되게 협력 원형 보존하는게 가장 급해”

  • 입력 2007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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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채탈’ 발견 도리즈 연구원

‘사라진 하회탈 중 하나’로 추정되는 탈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데는 야쓰시로(八代) 시립박물관 학예연구원 도리즈 료지(鳥津亮二·30·사진) 씨의 역할이 컸다.

도리즈 씨는 일본 전국시대인 1588∼1600년 야쓰시로 지역 다이묘(大名·영주)였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일본 내 첫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전국에 흩어진 관련 사료를 모으던 중 이 탈을 발견했다.

―고니시 유품 전시회를 기획했던 동기는….

“고니시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공한 장수지만 이 지역에서는 성을 짓고 시가지의 원형을 만들었으며 천주교를 전파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지역사에 중요한 인물이지만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가신이던 고니시는 조선에서 돌아온 뒤인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전국을 통일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해 처형됐다. 이후 야쓰시로는 도쿠가와의 가신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손에 넘어갔다.

―탈은 어떻게 보관돼 있었나.

“400년간 대대로 야쓰시로에서 살아온 한 가정의 불단 밑 오래된 나무상자에 담겨 보관돼 있었다.(일본인들은 가보를 불단 밑에 보관한다) 이 가족은 대대로 ‘조상이 고니시 장군의 조선 출병에 참가해 조선반도에서 가져온 것’이라며 보관해 왔을 뿐, 지방 사료에 관련 기록이 있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있었다. 이 가족이 4월 박물관 측에 보관을 의뢰했다.”

―탈의 유래를 확인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이 지방의 학자가 조선에서 온 가면임이 확실하다고 고증했다. 6월에는 한국에 가서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원의 도움으로 전경욱 고려대 교수를 소개받았다.”

―한국에 연구 목적으로 빌려주거나 연구에 협조할 의향은….

“한국의 탈 역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면 기쁘게 협력하고 싶다. 그러나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문화재를 관리하는 처지에서는 보존이 우선이다. 아직 나무의 재질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부터 보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 시간이 걸릴 듯하다.”

야쓰시로=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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