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가 구세주” 지사들 총출동 ‘애걸’

  • 입력 2007년 9월 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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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테 현을 비롯한 일본 도호쿠 지역의 6개 현이 공동으로 3, 4일 이틀간 아이치 현 가리야 시에서 기업 유치 활동을 벌였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자동차 관련 기업, 대학, 연구소 관계자들이 총출동해 도요타자동차 부품 업체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었다. 가리야=천광암 특파원
이와테 현을 비롯한 일본 도호쿠 지역의 6개 현이 공동으로 3, 4일 이틀간 아이치 현 가리야 시에서 기업 유치 활동을 벌였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자동차 관련 기업, 대학, 연구소 관계자들이 총출동해 도요타자동차 부품 업체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었다. 가리야=천광암 특파원
《일본에서 대기업을 유치하려는 지방자치단체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공공사업 예산을 따내기 위해 중앙 정부를 문턱이 닳도록 찾아다니던 지자체 관계자들이 이제는 발길을 도요타자동차와 샤프 등 대기업 본사로 돌리고 있다.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수천억 원의 보조금을 제공하는 지자체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해외로 떠났던 제조업체들의 U턴 현상과 맞물려 사상 유례가 없는 ‘일자리 풍년’과 ‘설비투자 붐’을 낳는 데 일조하고 있다. 도요타의 본거지인 나고야(名古屋)권을 찾아가 사활을 건 유치경쟁의 현장을 둘러봤다.》

3일 일본 아이치(愛知) 현 가리야(刈谷) 시 산업진흥센터에서 열린 자동차 관련 상담(商談)회에는 이와테(巖手) 등 도호쿠(東北) 지역 6개 현의 지사가 동시에 얼굴을 드러냈다.

도호쿠에서 1000km 이상 떨어진 인구 14만의 작은 지방도시에 광역자치단체장이 6명이나 ‘행차’를 한 목적은 이른바 ‘도요타 모데(詣で·참배)’. 도요타 모데란 지방자치단체들이 도요타나 관련 부품 업체를 찾아가 각종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며 투자를 ‘애걸’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 나고야는 기업 유치 전쟁터

덴소와 아이신정기 등 가리야 시에 있는 도요타 관련 부품 업체들에 도호쿠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마련한 이날 행사에는 공무원만 참가한 것이 아니다.

이와테 현 과학·제조업진흥과의 다카하시 마사히코(高橋雅彦) 주임주사는 “도호쿠 6개 현에 있는 자동차 관련 기업과 대학, 연구소는 사실상 하나도 빠짐없이 총출동했다”고 말했다.

이와테 현은 당초 단독으로 유치활동을 벌였지만 지자체 간 유치경쟁이 하루가 다르게 격화되면서 올해부터 도호쿠 6개 현은 힘을 하나로 합치기로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다카하시 주임은 “물밑에서는 6개 현 사이에서도 한 치의 양보 없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와테 현의 경우 지난해 공장 신설 보조금 상한선을 폐지하는 한편 도요타와 도요타 계열인 간토자동차공업의 퇴직사원 1명씩을 특채해 유치활동에 투입했다.

1명은 나고야 시에 상주하면서 유치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있고 다른 1명은 이와테 현에서 공무원들과 현지 기업들을 대상으로 자동차 관련 기업 유치에 필요한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이와테 현의 유치활동 거점인 나고야 시내의 한 건물에는 일본의 최북단인 홋카이도(北海道)도 기업유치사무소를 차려 놓고 있다.

올 6월 부임한 이타야 다카히로(板谷隆廣) 소장은 “홋카이도는 일본 최고의 관광지이지만 계절에 따른 기복이 심한 관광산업만으로 먹고사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자동차산업을 얼마나 유치할 수 있느냐에 홋카이도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치단체장이 안 오면 일단 그림이 안 되기 때문에 다음 달쯤 지사를 모시고 도요타 관련 기업들과의 교류회 겸 세미나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 “관(官)에서 민(民)으로”

나고야 일대의 기업 유치활동은 대개 현 단위로 이뤄지지만 시가 직접 나서는 사례도 있다.

후쿠오카(福岡) 현 기타큐슈(北九州) 시는 올해 4월 오사카사무소를 폐쇄하고 나고야에 기업유치사무소를 신설했다.

이노우에 유타카(井上裕) 소장은 “부임 후 5개월간 130개 기업을 방문했다”면서 “300개 기업을 방문하면 투자를 하겠다는 기업이 1곳은 나온다는 것이 이 분야에서 통용되는 경험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 전체적으로 앞으로 4년간 20개 기업을 유치하는 된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기타큐슈 시가 이처럼 의욕적으로 유치활동에 나서게 된 것은 2월 기타하시 겐지(北橋健治) 신임 시장 취임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기타큐슈 시는 자치성과 건설성에서 고위 관료 생활을 한 스에요시 고이치(末吉興一) 전 시장이 20년 동안 장기집권을 하면서 공공사업에 의존하는 시정(市政)을 펴 왔다. 그 결과로 남게 된 것이 1조4000억 엔(약 11조 원)에 이르는 방대한 부채다.

기타하시 시장이 집권 자민당과 스에요시 전 시장이 강력히 민 건설관료 출신 후보를 누를 수 있었던 것은 공공사업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 시민의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바람직한 지방행정의 리더십이 ‘관관(官官)로비형’에서 ‘기업유치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은 일본 전체의 광역단체장 출신 분포에서도 확인된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중앙정부와의 두터운 ‘파이프’가 자산인 총무성(옛 자치성) 출신 광역단체장은 1995년 16명에서 현재 12명으로 줄었다. 반면 기업계와 친분을 쌓을 기회가 많은 경제산업성(옛 통산성) 출신 광역단체장은 2명에서 9명으로 늘었다.

○ 도요타는 ‘실업 특효약’

일본 지자체들이 도요타에 특히 정성을 들이는 이유는 일자리 창출 효과가 다른 산업이나 기업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도요타 관련 기업이 밀집한 아이치 현의 5월 현재 유효구인배율은 2.05에 이른다. 유효구인배율이란 기업의 구인 수요를 구직자 수로 나눈 수치. 즉, 구인 수요가 구직 수요에 비해 2배나 많다는 이야기다.

아이치 현과 인접한 기후(岐阜·1.36), 시즈오카(靜岡·1.23), 미에(三重·1.38), 시가(滋賀·1.30) 현 등도 구인 수요가 구직 수요를 크게 웃돌고 있다.

2003년 ‘자동차 100만 대 생산거점 구상’을 발표하고 본격 유치경쟁에 뛰어든 후쿠오카 현은 벌써부터 ‘도요타 효과’를 실감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지금까지 56개 기업이 진출해 1만3000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

심지어 규슈(九州) 지역에서는 자동차공장이 있는 후쿠오카, 오이타(大分), 구마모토(熊本)와 그렇지 않은 가고시마(鹿兒島), 미야자키(宮崎) 등과의 ‘북남격차’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 실정이다.

일자리 창출에 관한 한 “지방의 구세주는 정부가 아니라 도요타”라는 말이 과언이 아닌 셈이다.

아이치=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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