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 인질 건강 위협하는 아프간의 '복병'

  • 입력 2007년 8월 5일 13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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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피랍사건이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지역은 수인성 질환이 매년 유행하고 흡혈곤충이 매개하는 기생충 감염자도 수십만 명에 이르는 등 살해 위협이 없더라도 면역력이 저하된 피랍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5일 전문가들과 미 해군의 '아프간 지역 감염성 질환' 보고서(2002년)에 따르면 수십만 명의 아프간인들이 '샌드플라이(Sandfly)'로 불리는 흡혈곤충이 옮기는 피부기생충 '리슈만편모충증'에 감염돼 있다.

당시 아프간 수도 카불 지역의 인구 200만 명 중 20만 명이 리슈만편모충증에 감염돼 있을 만큼 리슈만편모충증은 아프간의 큰 골칫거리다. 피해지역은 카불에 국한되지 않는다. 남부 칸다하르와 마자리샤리프 지역에도 7만 여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사막지역에 사는 모기와 비슷한 흡혈곤충인 샌드플라이에 물려 감염되는 이 질병은 치명적이지는 않으나 약 9개월 동안 지속된 후 피부에 크고 흉칙한 자국을 남긴다.

수인성 전염병도 인질들의 건강을 크게 위협할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아프간은 비록 건조한 지역이지만 공중위생 상태가 좋지 못해 최근 2-3년간 여러 차례 장티푸스와 콜레라 등 수인성 질환이 유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염 전문가 정보사이트인 '프로메드'에 따르면 올해 2월에도 장티푸스와 콜레라가 대규모로 발생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도 지난 2001년과 2005년에 이 지역에서 각각 4천500명과 3천200여 명의 콜레라 환자 발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내에서는 비교적 드문 A형 간염과 E형 간염도 매년 수십 명씩 보고되는 형편이다.

지난 2002년 미 해군이 작성한 아프간 지역의 감염성 질환 보고서도 장티푸스와 말라리아, 그리고 콜레라를 비롯한 각종 설사병에 주목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과거 아프간을 침공했던 러시아군의 43%가 호흡기감염을 경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덥고 건조한 기후지만 호흡기질환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살균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유제품도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피랍사태 직전 아프간 지역으로 의료봉사를 다녀 온 서울대 의대 학생들에 따르면 우유와 염소젖으로 만든 유제품과 밀가루 빵을 주식으로 하는 이 지역에서는 살균처리가 되지 않는 유제품으로 인한 브루셀라, 결핵, Q열병 감염도 우려된다.

이 지역에만 있는 바이러스성 질환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오명돈 교수는 "이 지역 특유의 바이러스성 질환의 위험성도 있다"며 "피랍자들이 낯선 항원에 노출되면 현지인보다 증상이 훨씬 더 심각할 수 있으며 수인성 질환으로 인한 탈수증상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인질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므로 인체 내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인 부신피질자극호르몬(ACTH)이나 성장호르몬 분비가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스트레스 호르몬의 일종인 부신피질호르몬(코티솔)은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한다. 여기다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 탈수와 체중감소가 수반되면 면역기능이 급격히 저하되므로 국내에서는 쉽게 치료되는 수인성 질환으로도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김성운 교수는 "피랍자들 대부분이 면역기능이 심각하게 훼손됐을 것"이라며 "조그만 감염도 패혈증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피랍 장기화로 감염성 질환 외에도 각종 급, 만성 질환과 정신과질환의 위험도 심각하다.

스트레스 호르몬은 우리 몸의 혈당을 올리는 작용이 있어 당뇨병 소인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뇨병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자의 경우 과도한 스트레스는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유발할 수 있다.

충격적인 상황이 종료된 후 불안을 겪는 것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라면, 피랍자들의 공포는 '현재진행형'이므로 인질들은 '급성 스트레스장애(acute stress disorder)' 상태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상적인 불안반응의 경우 긴장도와 각성도가 높아지지만, 극도의 공포가 오래 지속되면 오히려 외부 현실에 대해 둔해지거나 '멍'해지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는 인체가 뇌를 보호하려는 자기방어 작용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주변의 상황이나 현실 감각이 떨어지고 스스로 '자기 자신'이 아닌 것 같은 상태가 된다. 공포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해리성 기억상실' 증상도 수반된다.

불안장애 전문가인 이상민 비행공포증연구소장은 "전투나 일반적인 위급상황과 달리 현재 피랍자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무감각한 상태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며 "극도의 불안상태를 오래 겪을 경우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완전히 망가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도움말: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오명돈 교수, 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김성운 교수, 비행공포증연구소 이상민 소장)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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