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반환 10주년…대륙-홍콩 ‘경제는 一國, 정치는 兩制’

  • 입력 2007년 6월 1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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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1일은 156년간 영국의 식민지 통치를 받았던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된 지 10주년 되는 날이다. 10년 전 ‘홍콩의 사망’을 예언했던 서방 언론 및 전문가들의 시각과는 달리 홍콩은 최근 연 6∼8%의 경제성장률을 자랑하며 ‘동방의 진주(東方之珠)’ 자리를 굳건히 지켜 나가고 있다. 그러나 중국 중앙정부는 ‘일국양제(一國兩制)’의 원칙 아래 보장하기로 한 ‘홍콩인의 홍콩 통치(港人治港)’를 무시하기 일쑤다. 홍콩인의 정체성이 혼란을 겪는 이유도 여기서 출발한다. ‘사회주의 속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실험장, 홍콩을 현지 취재했다.

홍콩 거리에서 아무나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당신은 중국인인가요(Are you chinese)?”라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아뇨(No)”라고 대답한다.

“그럼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면 ‘홍콩인(Hongkonger)’이라거나 ‘중국의 홍콩인(chinese Hongkonger)’, ‘홍콩의 중국인(Hongkong chinese)’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나는 중국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실제로 홍콩 중원(中文)대가 지난해 홍콩 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답한 사람은 18.6%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홍콩인(21.5%), 중국의 홍콩인(21.2%), 홍콩의 중국인(38.1%)이라고 대답했다.

청소년층은 더 심하다. 지난해 홍콩대 조사에서 홍콩인이라는 답변은 28.7%, 중국의 홍콩인 22.3%, 홍콩의 중국인 39.4% 등으로 중국인이라고 답변한 사람은 10%에도 못 미쳤다.

홍콩인의 이런 의식 저변엔 대륙인에 대한 우월감이 깔려 있다. 지난해 홍콩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만7680달러로 대륙의 2004달러보다 무려 13.8배 많다.

문화적 우월감도 크다. 시끄럽게 떠들면서 우르르 몰려가 물건을 사거나 길거리에 침을 함부로 뱉고 신호를 안 지키고 무단횡단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크게 떠드는 사람은 대부분 중국 대륙에서 온 사람들이다. 홍콩인은 법과 규정을 안 지키고 ‘관시(關係)’를 이용해 일을 성사시키려는 대륙인을 경멸한다.

○중국 경제 급성장…대륙 덕 톡톡히 봐

그러나 최근 중국 경제가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면서 이런 정체성에도 약간의 변화가 감지된다. 자신이 홍콩인임을 강조하는 사람은 약간씩 줄어드는 반면 중국인임을 강조하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당시 자신을 중국인 또는 홍콩의 중국인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다 합쳐 30% 선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나름대로 큰 변화다.

특히 1997년 2만7170달러였던 홍콩 주민의 1인당 GDP가 2003년 2만3500달러 수준까지 곤두박질쳤다가 대륙 정부의 특혜조치로 지난해 2만7680달러로 회복된 뒤 이런 경향이 짙어졌다.

‘동방의 진주’로 불리던 홍콩은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되면 곧 사망할 것”이라는 서방 언론의 예측을 입증이라도 하듯 2003년까지 경제성장률이 4.0∼―5.5% 수준을 맴돌았다. 중국이 2004년 홍콩과 경제협력강화협정(CEPA)을 체결해 수입관세를 철폐하고 대륙인의 자유로운 홍콩 여행을 허용하면서 관광객이 급증해 홍콩 경제는 극적으로 회생했다.

특히 중국 정부가 자국의 우량기업을 홍콩 증시에 공개하도록 하면서 1997년 4135억 달러 규모였던 홍콩 증시의 시가는 지난해 말 1조7155억 달러로 4배 이상 몸집이 커졌다.

현재 세계 100대 은행 중 69개가 홍콩에 법인을 두었고 홍콩은 세계 3대 국제은행센터로 우뚝 섰다. 외환거래는 세계 6위이며 황금 거래는 세계 4위다. 대륙 덕에 ‘동방의 진주’에서 ‘세계의 진주’로 발돋움한 셈이다.

이처럼 홍콩 경제에 미치는 대륙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대륙인을 멸시해 부르던 ‘아찬(阿燦)’이라는 말도 사라졌다. 광둥(廣東)말과 영어만 쓰던 홍콩인들은 최근 ‘푸퉁화(普通話·표준어)’도 배우려 한다. 사업상 푸퉁화를 써야 할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호감도 역시 늘었다. 2004년 35%에 불과했던 대륙에 대한 호감도는 지난달 말 홍콩대 조사 결과 44%로 높아졌다.

○정치제도 우월감 “대륙이 따라오라”

홍콩인이 대륙과 자신들을 가장 차별화하려는 것은 정치제도다. 공산당 일당독재와 전국인민대표 선출 절차가 모두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경제는 일국(一國)’이지만 ‘정치는 양제(兩制)’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돈다. 경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통일됐지만 정치는 여전히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로 양분돼 있다는 것이다.

홍콩은 행정수반인 행정장관과 의회격인 입법회 의원 전원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대륙 정부는 홍콩의 직선제 허용이 대륙에서의 민주화 열풍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어 마뜩찮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홍콩인은 여전히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최근 40년간 중국 대륙의 변화를 보면 ‘일국양제’가 마감되는 40년 뒤 중국이 어떤 정치제도를 갖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40대 홍콩 기업인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뒤 홍콩이 변한 게 뭐가 있느냐. 대륙 정부가 경제에서 시장경제를 채택한 것처럼 정치에서도 자유민주주의의 길을 채택할 때 홍콩과 대륙의 진정한 통합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유전자(DNA)’가 홍콩에 와야 하는 게 아니라 ‘홍콩의 DNA’가 중국으로 전파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홍콩=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주민 60%가 직접선거 원해…내달쯤 민주화 일정 나올것”▼

“올해 7, 8월경 홍콩의 민주화 방향과 일정을 담은 청사진이 나올 것입니다.”

15일 홍콩의 유력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본사 사옥에서 만난 정치전문 대기자 크리스 영(중국명 楊健興·양젠싱·47·사진) 씨는 “올해가 홍콩 민주화의 관건이 되는 해”라며 이같이 말했다.

―민주화에 대한 홍콩 주민들의 의견은….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홍콩 주민의 60%가 빨리 전면적인 보통선거를 하자는 것이다. 즉 행정장관과 의회의원에 해당되는 입법회 의원을 모두 주민이 직접 선출하자는 것이다.”

―중국 대륙 정부가 이에 부정적인데….

“맞다. 중국 정부는 홍콩에서 전면적인 보통선거가 이뤄지면 이에 영향을 받은 중국 내륙의 도시들이 불안정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홍콩 주민과 대륙 정부의 의견이 엇갈리는데 홍콩 정부의 대책은….

“도널드 창 행정장관은 올해 7, 8월경 민주화 방향 및 일정에 대한 3가지 정도의 초안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공개하고 올해 말까지는 베이징(北京) 중앙당국과 협의해 민주화 일정을 확정짓겠다는 것이다.”

―만약 대륙 정부의 의견과 홍콩 주민의 의견이 충돌하면….

“2012년까지 전면적인 보통선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양측 의견에 차가 크면 2003년과 같은 대규모 시위 사태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엔 워낙 경제가 안 좋았고 둥젠화(董建華) 당시 행정장관이 정치를 제대로 못했다. 올해는 그렇게 심각한 사태는 오지 않을 것으로 본다.”

1984년 입사한 뒤 줄곧 홍콩 정치를 취재해 온 영 씨는 가능한 한 정치에 관해서는 ‘입조심’을 하려는 다른 홍콩인과 달리 자신의 견해를 스스럼없이 털어놨다.

홍콩=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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