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만 일하나, 돈벼락 너무해”

  • 입력 2007년 3월 2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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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기업은 주주총회가 한창이다. 지난해 12월 말로 회계연도가 끝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주총에 임하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겐 큰 고민이 추가됐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CEO들의 연봉에 대한 정치·제도적 규제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 자본주의의 본고장인 미국답게 아직은 “기업의 주인인 주주가 허용하는 액수라면 최고의 인재 영입을 위해 고액 연봉이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우세하지만 월급쟁이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섰고, 사회적 연대를 깨는 무책임한 액수라는 주장도 끊이지 않고 있다.

1980년 CEO 평균 급여는 일반 노동자 평균의 140배였지만, 지난해엔 500배가 됐다는 조사결과가 공개된 것도 비판론을 부채질했다.

▽얼마나 받나?=포천지가 지난해 10월 공개한 500대 기업 CEO들의 2005년 연봉은 많게는 7140만 달러(약 690억 원)에서 200만∼300만 달러로 집계됐다.

물론 최악의 경영난을 맞은 GM의 자동차부품 회사인 델파이, 항공구조조정을 겪어 온 아메리칸 항공의 회장처럼 ‘허리띠를 졸라 매겠다’는 뜻에서 ‘1달러 연봉’ 같은 상징적 소액 연봉을 받고 일하는 CEO도 있다.

하지만 올 1월 화장실 목욕탕 정원용품을 파는 ‘홈 디포’의 로버트 나델리 회장이 퇴직금으로 2억1000만 달러(약 2000억 원)를 받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론은 악화됐다. 그가 재임한 지난 6년간 이 회사 주가는 꾸준히 하락했다.

가뜩이나 높은 유가로 버거워하던 미국인들은 또 엑손모빌의 리 레이먼드 회장이 2006년 초 은퇴할 때 퇴직금으로 4억 달러(약 3800억 원)를 챙겼다는 소식에 기분이 상했다.

도요타 자동차의 최고경영자 그룹의 연봉 추정치가 미 언론들에 공개된 것도 여론을 악화시켰다. 지난해 10조 원에 가까운 당기순이익을 낸 대표적인 흑자기업인 도요타 자동차 CEO의 2005년 연간 급여 총액이 10억 원을 넘지 않는다는 보고서가 나온 것. 이는 적자에 허덕이는 GM, 포드의 수많은 부사장급 경영자가 보너스를 잘 받았을 때의 연 수입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미국 CEO 연봉이 지나치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친기업정책을 펴 온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올 1월 “CEO 급여가 지나치게 올랐다(oversized). 경영성과와 연동시킬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의회와 시장의 협공=22일 표결이 연기된 민주당의 ‘CEO 급여 평가법안’은 이런 기류에서 가능했다. 노조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은 야당 시절엔 “주주에게 CEO 급여 거부권을 주자”는 법안을 냈다. 그러나 제1당이 된 올해부터는 이념보다는 현실 적용 가능성에 주안점을 둔 법안을 냈다. 즉, 이사회가 CEO 급여(연봉+보너스+스톡옵션)를 정하는 권한은 인정하지만, 결정된 액수에 대해 주주들이 의견 표시는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물론 이런 의견 표시를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다.

CEO 연봉에 심리적 압박을 둬야 한다는 노력은 정치권 외에도 다양한 곳에서 나오고 있다. 코네티컷 주정부의 공무원 연금관리자, 하버드대의 경영학 교수, 기업에 주식투자하는 대형 보험사의 펀드매니저 등은 주주운동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왜 이렇게 올랐나=조지워싱턴대 박윤식(경영학) 교수는 “1980년대에 미국 회사들은 일본의 약진 등 여러 경제 여건 때문에 고전을 많이 하면서 구조조정이 매우 활발해졌다”며 “그 결과 경영자의 교체 주기가 급속히 빨라지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분기마다 재무제표를 내는 미국 기업의 특성도 영향을 미쳤다. 박 교수는 “분기별로 성적표가 나오니까 CEO에게 가해지는 성과 압력이 격심해지고 교체주기가 짧아진다”고 지적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 美진보센터 웰러 박사

“1980년대 이후 노조 약화 초고액 연봉 제동 못걸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설립해 노조의 지지를 받는 미국진보센터의 크리스천 웰러(사진) 박사도 15일 인터뷰에서 “경영자와 노동자의 지나친 임금 격차를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고경영자(CEO)의 연봉은 왜 이렇게 올랐나.

“1960∼80년대 20년 동안 캘리포니아 연기금(CalPERS) 같은 대규모 기관투자가의 실질 주식투자 수익률(물가상승률과 거래 수수료를 제외한 수익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기관투자가들은 실적 유지를 위해 몇 백만 달러를 더 주더라도 주가를 몇 %포인트 더 올릴 수 있는 우수 경영자를 찾아 나섰다.”

―주주의 동의만으로 CEO 연봉이 노동자의 400배라는 게 이해가 안 간다.

“1980년 이후 로널드 레이건 보수주의의 등장에 따라 그동안 경영 과정에 큰 힘을 발휘했던 노조가 약화된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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