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강 미니기업가다]<11>‘통증 없는 주사기’ 오카노공업

  • 입력 2007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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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기술… 허름한 공장 ‘밖은 초라한 미니기업, 안은 최첨단 기술의 보고.’ 일본 도쿄 스미다 구에 있는 오카노공업은 금형 및 프레스 기술자 6명이 일하는 가내수공업형 초미니기업이다. 하지만 50평 남짓한 허름한 공장에서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오카노공업의 한 기술자가 무통주사기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다(위). 도쿄=김창원  기자
최첨단 기술… 허름한 공장
‘밖은 초라한 미니기업, 안은 최첨단 기술의 보고.’ 일본 도쿄 스미다 구에 있는 오카노공업은 금형 및 프레스 기술자 6명이 일하는 가내수공업형 초미니기업이다. 하지만 50평 남짓한 허름한 공장에서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오카노공업의 한 기술자가 무통주사기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다(위). 도쿄=김창원 기자
《“아프지 않다니까요. 한번 찔러 보세요.” 두 눈을 꾹 감고 팔뚝에 주삿바늘을 찔러봤다. 뭔가 피부에 와 닿는 게 느껴졌지만 아프지 않았다. 오카노공업이 만들고 있는 ‘모기 침’만큼이나 가늘다는 ‘무통(無痛)주사기’다. 지름이 0.2mm로 병원에서 주로 쓰이는 일반 주삿바늘(지름 0.3mm) 굵기보다 가늘다.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투약에 주로 쓰인다. 오카노공업은 이 주사기를 2005년 7월부터 세계적인 의료기기 제조사인 일본 텔모사에 납품하고 있다.》

‘로테크(저급기술) 없이는 하이테크도 없다’고 외치는 기업이 있다.

일본 도쿄(東京) 스미다(墨田) 구에 위치한 오카노공업. 금형 및 프레스 전문업체인 이 회사는 전형적인 가내수공업형 미니기업이다.

금형과 프레스는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기술이지만 컴퓨터와 최신 설비가 도입되면서 부가가치가 낮은 사양산업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오카노공업은 독창적인 기술로 ‘별 볼일 없는’ 업종을 감탄의 대상으로 바꿨다.

오카노공업의 ‘쇠 다루는 기술’이 유명해지면서 도요타 등 일본 대기업은 물론 미국항공우주국(NASA)까지 제작을 의뢰해 올 정도다.

이 회사 오카노 마사유키(岡野雅行·74) 대표는 “소형 휴대전화기나 연료전지와 같은 최첨단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금형, 프레스와 같은 로테크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지포라이터에서 우주선까지

스미다 구는 영세한 금형업체와 프레스업체들이 몰려 있는 이른바 ‘도쿄의 구로공단’이다. 오카노공업 역시 겉모습만 보면 다른 공장들과 다를 바 없는 ‘동네 공장’이다.

취재팀의 실망스러운 눈빛을 눈치 챘는지 오카노 대표는 사진촬영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작업실로 안내했다. 작업 공정 하나하나가 ‘일급비밀’이기에 외부인에게는 좀처럼 공개하지 않는 곳이다.

50평 남짓한 공장의 한쪽에 설치된 무통주사기 제작 플랜트에서는 종이처럼 얇게 돌돌 감긴 스테인리스 철판이 프레스로 옮겨가면서 3초에 한 개꼴로 주삿바늘로 변했다.

오카노 대표는 “제품 개발에 6개월,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는 데 4년이 넘게 걸렸다”면서 “현재는 연간 2억4000만 개를 만들고 있지만 3년 후에는 10억 개가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주삿바늘을 단지 가늘게 만드는 것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도 이 제품은 끝으로 갈수록 굵기가 가늘어져 약품이 피부 속으로 쉽게 주입되는 게 특징”이라고 자랑했다.

무통주사기 제작에는 오카노공업의 전매특허인 ‘딥드로잉(deep drawing)’ 기술이 이용됐다. 이는 한 장의 얇은 철판을 이음매 없이 서서히 프레스하면서 바닥이 깊은 원통 모양으로 만드는 금속 가공 기술. 딥드로잉 기술 덕분에 스테인리스처럼 다루기 힘든 금속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됐다.

30년 전 지포라이터 케이스를 만들 때 사용하던 기술이지만 지금은 휴대전화기 등 소형 가전제품의 리튬이온전지 케이스 제작에 사용되고 있다.

이 기술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2001년에는 NASA로부터 우주선에 쓰이는 티타늄 소재를 가공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미 국방부로부터는 전투기 부품을 주문받기도 했다.

○유연한 조직이 독창적 기술을 만든다

놀라운 사실은 독보적인 기술을 가진 이 회사의 종업원 수가 오카노 대표를 포함해 단 6명뿐이라는 점. 연간 매출은 약 60억 원으로 직원 1명당 매출이 10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오카노공업은 회사 인원과 매출 같은 외형적 실적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카노 대표는 “당장이라도 종업원을 수백 명으로 늘리고 매출도 키울 수 있지만 공장이 커지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고정밀, 고품질 제품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장인정신에서 나오는데 대기업처럼 이윤내기에 급급한 조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게 이유다. 이렇게 해서 만든 제품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기 때문에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다.

그 대신 오카노공업은 3년 이상 사용한 기술은 과감히 팔아버리는 ‘치고 빠지기 식’ 전략을 쓴다. 경쟁업체들이 비슷하게라도 제품을 모방하기 시작하면 고가전략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청업체도 미래 보는 눈을 가져야

오카노공업이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는 기술 트렌드 변화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는 데 있다. 실제로 오카노공업은 10여 년 전 전력회사의 단골메뉴였던 송전선 주문이 줄고 있음을 미리 간파해 일찌감치 연료전지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오카노공업은 10년 동안 축적한 연료전지 기술로 현재 일본의 유수 자동차 업체와 함께 연료전지차 개발에 깊숙이 간여하고 있다.

오카노 대표는 “상용기술로 대기업의 하청이나 받아먹는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며 “하청업체도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많은 기술특허를 가지고 있지만 모두 제휴 대기업과의 공동특허로 출원하는 것도 오카노공업의 특허관리 노하우다.

특허를 내려면 등록할 때부터 천문학적인 돈을 써야 할 뿐만 아니라 개인이 특허를 유지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기업과 특허를 공유해야 다른 기업들이 모방을 해도 대응할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에는 명분보다 실리가 중요하다는 오카노공업의 철학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도쿄=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대표사원’ 직함 오카노 대표

“匠人만 있을 뿐 사장은 필요없어”▼

오카노 마사유키(사진) 대표의 명함에는 ‘대표사원’이라는 이색 직함이 달려 있다.

“장인세계는 오로지 기술로 인정받을 뿐 경영하는 사장은 필요 없다”는 철저한 장인 철학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금형·프레스 업체들이 포기한 제품도 오카노 대표의 손 안에서는 ‘작품’이 된다. 오카노공업만이 만들 수 있는 제품들은 곧 금형·프레스 업계의 ‘명품 브랜드’로 통한다. 이 때문에 붙은 별명이 ‘도쿄의 루이비통’이다.

이 같은 기술력이 있기에 그는 대기업의 요구라도 싫으면 당당히 ‘NO’라고 거부한다. “어수룩한 대기업 덕분에 돈을 번다”고 자신 있게 외치고 다닐 정도다.

그는 “중소기업 스스로가 자신을 보호해 줘야 하는 ‘사회적 약자’로 생각하는 게 문제”라면서 “대기업의 하청, 재하청으로 호의호식하려는 중소기업의 체질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카노 대표는 ‘창조성의 최대 적’으로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대기업 마인드’를 꼽는다.

“소니, 마쓰시타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면 우리가 만드는 것쯤은 모두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최신 설비와 최우수 인재를 보유한 대기업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아무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무책임한 의사결정 구조 때문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은 실패가 두려워 모험을 하려 하지 않고 직원들은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넘어가려는 ‘대기업의 적당주의’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오카노 대표의 저서 중 한 권이 최근 국내에서도 번역됐다. 책을 가져가 ‘저자 한 말씀’을 부탁했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어구라며 ‘천일산(天一山)’이라는 화두를 적어 줬다. ‘하늘 아래 최고 높은 산’이 되고 싶다는 표현이었다.

그는 타고난 장인이었다.

도쿄=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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