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현대車 한대라도 하자땐 전량 반송”

  • 입력 2007년 1월 1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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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조각 쇠고기’ 파문이 불러온 한미 무역갈등이 감정싸움을 넘어 양국의 정치권이 개입하면서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맥스 보커스 상원 재무위원장을 비롯한 미 상원의원 11명은 17일 “한미 쇠고기 교역의 정상화 없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지지할 수 없다”는 초강경 방침을 밝혔다.

한미 양국은 18일까지 “뼈 없는 쇠고기 수입규정 세부규정을 추가로 만든다”는 양해 사항조차 이행하지 못한 데다 뾰족한 돌파구도 찾지 못한 상황이다.

워싱턴과 서울의 협상 전문가들은 “정부 간 협상으로 풀 여지가 줄어든 만큼 정치지도자가 당장 비판을 듣더라도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상원의 초강수=이태식 주미 한국대사는 17일 미 상원의 초청으로 의회를 방문해 쇠고기 생산지역인 네브래스카 콜로라도 몬태나 주의 연방 상원의원 11명과 마주 앉았다. 의원들은 쇠고기 교역의 ‘정상화’를 요구했다.

2003년 12월 불거진 광우병 파동 이전 상황, 즉 LA갈비처럼 뼈가 붙은 고기까지 수입하던 ‘이전 상태’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한미 FTA 협정 비준안을 다룰 상원 재무위원장 보커스 의원은 “뼈 포함 여부나 소의 나이와 무관하게 수입이 재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FTA를 지지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AFP통신은 이 발언을 “(11인의) 최후통첩”이라고 묘사했다.

이 대사는 “일단 뼈 있는 쇠고기 문제부터 해결하는 데 주력하자”고 답했다.

▽워싱턴 기류=워싱턴의 이런 강경 기류는 오래전부터 감지돼 왔다. 미 축산농가협회(NCBA)는 “한국의 식품안전기준을 고치라는 요구도 하지 않겠다. 국제교역상 양해되는 허용치만 인정하라”는 탄원성 성명을 냈다.

바이런 도건 상원의원은 비공개석상에서 “현대자동차 수입물량인 70만 대의 안전성을 전수(全數) 조사한 뒤 한 대라도 문제가 있으면 전량 반송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격앙된 미 의회의 기류를 반영한 발언이다.

한 워싱턴 소식통은 한국의 주장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담긴 ‘무리한 문구해석’과 다름없다고 귀띔했다.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대출금을 못 갚은 주인공의 살점을 도려내기로 했지만, ‘살만 베어내되 피는 흘리면 안 된다’는 조항 때문에 피해를 본다. 결국 “뼈 없는 쇠고기란 뼈를 떼어냈다(boneless)는 의미인 만큼 뼛조각이 ‘한 조각도 없다 (bone free)’라는 뜻으로 무리하게 해석해 국제관행에 어긋나게 하지 말라”고 은연중 촉구하는 뜻이다.

한국 정치권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수차례에 걸쳐 “미국 도축장의 위생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뜻을 미국 농무부에 전달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이런 기류 탓인지 올 초 열기로 했던 ‘한미 쇠고기 검역에 대한 기술협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뼈 없는’이란 용어의 정의, 전수조사 혹은 샘플검사 여부 등 지난해 양국이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쇠고기라면 수입을 재개한다’고 합의할 때 결정을 유보했던 ‘협상 미비사항’을 보충하려던 협의였다.

한국은 지난해 말 3차례에 걸쳐 9t 분량의 쇠고기를 수입했지만 X선으로 뼈의 포함 여부를 살핀 뒤 2차례 전량 반송했다. 3차 수입 때는 X선 검사로 확인되지 않자 포장을 뜯은 뒤 육안으로 손톱 크기의 뼛조각을 발견한 뒤 돌려보냈다.

한국과 함께 최대 수입국인 일본은 ‘20개월 미만의 뼈 있는 쇠고기’를 대상으로 수입을 재개한 상태다.

▽정치로 풀자는 주문=한국 정부는 축산 주무부처인 농림부와 한미 무역협상 주무창구인 외교통상부, 재정경제부 사이에 견해가 엇갈린다. 김종훈 FTA 협상 수석대표는 1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의 기자간담회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쇠고기를) 전수검사해서 뼈가 있는 것은 돌려보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먹으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농림부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한국 정부의 주무부처 차원에서 협상을 타개하기엔 사안이 너무 커졌다는 점이다.

미 축산업계 관계자는 “농무부로부터 한국 정부가 (검역 세부 절차를) 실무자의 판단이라고 떠넘긴다는 말을 들었다”며 협상 타결 가능성을 낮게 봤다. 워싱턴에서도 “결국 행정(관료)보다 정치(정치지도자)의 힘을 통해 풀 사안”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정치권에서 ‘국제관행에 부합하는 이성적 협상’을 거론하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배경에 반미 정서가 짙게 깔려 있는 데다 “위험할 수 있는데 수입하자는 말이냐”는 반론까지 있기 때문이다. 반면 농촌지역 지역구 출신 의원을 중심으로 “절대 안 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분위기다.

한 소식통은 익명을 전제로 “정치인에게 ‘국제관행을 따르자’는 의견 표명은 당장 표 손실로 이어지겠지만, 한국 사회도 이성을 되찾고 꼼꼼히 따져 본다면 국제협상의 합리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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