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증권집단소송 이대론 안돼”…재무부, 법개정 착수

  • 입력 2006년 9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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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업 관계자들이 “이름만 들어도 골치가 아프다”고 하소연하는 법이 있다. ‘사베인스-옥슬리법(Sarbanes-Oxley Act)’이라는 기업회계 개혁법이다.

월드컴과 엔론의 회계분식 스캔들이 잇따르면서 2002년 제정된 이 법은 부실회계에 대한 이사회의 책임 및 처벌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천문학적 규모의 증권집단소송 근거로 활용되다 보니 ‘걸리면 끝장’이라는 비명까지 터져 나온다.

미국 재무부가 최근 자국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이 법 개정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미 증시에 상장된 한국 기업의 활동뿐 아니라 미국법의 영향을 받는 국내 회계감사법의 개정 방향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이 법이 2003년 SK글로벌 및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 이후 국내 회계감사 및 증권집단소송 관련법을 강화하는 데 모델 역할을 한 점도 눈여겨볼 부분. 재계 일부에서는 “규제완화 쪽으로 돌아선 국내정책 움직임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4년 만에 다시 심판대에 오르다=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에 따르면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12일 사베인스-옥슬리법 개정을 위해 구성된 ‘자본시장규제위원회(CMR)’의 활동에 지지를 표명했다. 그는 “미국 자본시장의 경쟁력을 점검할 위원회의 활동은 미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무척 중요한 작업”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위원회는 사베인스-옥슬리법이 기업 활동 및 미국 증시에 미친 영향, 증권집단소송 현황, 주주의 권리 보호 문제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11월 중간선거가 끝난 이후 내놓게 될 중간보고서에는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내용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논란을 빚어온 404조에 대한 분석이 집중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상장기업이 회계 관리시스템을 점검해 문제점을 시정하도록 하고, 이와 관련된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한 조항이지만 기업인들은 “회계의 투명성 강화에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나 기업개발을 위한 투자를 저해한다”고 불평을 쏟아냈다.

최근 해외기업이 미국 투자를 기피하고 다른 나라로 잇따라 떠나는 것도 이 법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순탄치 않은 앞길=법 개정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목소리는 높아졌지만 실제 법을 바꾸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일단 의회의 자세가 적극적이지 않다. 의원들은 엔론과 월드컴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원칙 앞에서 여론의 눈치만 보는 분위기다. 주주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현행법의 유지에 찬성하는 민주당이 11월 선거 후 주요 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차지할 경우 법 개정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법 개정은 미 증시에 상장돼 있는 한국 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베인스-옥슬리법은 올해 7월부터 자본금 7500만 달러 이상의 해외 기업에도 적용되고 있다. 우리, 신한금융지주와 KT, 포스코, 한국전력 등도 그 대상이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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