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프린스턴大서 마주친 ‘9·11’

  • 입력 2006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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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여행하다 보면 어느 지역을 가도 빠지지 않는 조형물이 있다. 바로 전사자 기념탑이다. 대부분의 미국 도시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참전 용사들을 위한 조형물을 세워 놓고 그들을 기린다.

얼마 전 뉴욕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뉴저지 주의 프린스턴대를 방문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가이드를 맡은 프린스턴대 재학생은 방문객들을 ‘메모리얼홀’이라는 건물로 안내했다.

독립전쟁, 제1차 및 2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프린스턴대 동문들의 이름이 학번, 전사 연도와 함께 빼곡히 벽을 메우고 있었다. 한국전쟁에서는 29명의 프린스턴대 동문이 전사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이어 가이드는 방문객들을 ‘메모리얼가든’으로 안내했다. 2001년 9·11테러에 희생된 동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작은 정원이었다. 당시 세계무역센터(WTC)에 근무하다가 사망한 동문 13명의 이름이 청동으로 만든 종 모양의 조형물에 학번과 함께 새겨져 있었다. 조형물의 제목은 ‘기억(Remembrance)’이었다.

그때 새삼 떠오른 것이 ‘미국인에게 9·11은 전쟁과 다름없는 상처를 남겼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일주일 전인 4일 취재를 위해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제로를 방문했을 때 입구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한 문구도 바로 ‘기억’이었다. 입구 철조망에는 ‘여기, 9·11을 기억하며(Here, remembering 9/11)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전 뉴욕 시 소방관 폴 맥패든 씨는 “우리는 9·11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9·11테러가 발생한 지 5년. 요즘 미국 전역에는 추모의 물결이 휩쓸고 있다. 뉴욕과 워싱턴은 물론이고 희생자가 자랐던 작은 도시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다.

행사의 한결같은 메시지는 ‘9·11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마치 하와이 진주만이 일본군에 기습 공격을 당한 뒤 미국인이 외쳤던 ‘진주만을 기억하라’는 구호를 떠올리게 했다.

이같이 ‘9·11테러의 기억’은 미국인의 의식 속에 낙인처럼 뚜렷하게 새겨져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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