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디자인 세계는 지금]<1>일본 ‘껍질 벗는 저축 왕국’

  • 입력 2006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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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토너나 수영 선수는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마찬가지로 돈을 모으려면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

구체적인 목적은 자녀 교육을 위해, 또는 더 좋은 집을 사기 위해 등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건강하고 여유 있는 노후생활을 포함한 ‘행복한 인생’일 것이다.

언제까지 살지 몰라 ‘장수가 리스크’가 된 요즘 자산을 잘 운용하지 않으면 행복한 인생을 완성하기 어렵다.

본보는 미국 영국 스위스 홍콩 일본을 찾아 이들 나라에서는 개인 자산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운용하 는지 살펴봤다. 4회에 걸쳐 시리즈로 소개한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신흥시장 증시는 어떤 영향을 받나요. 또 일본 증시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일본 도쿄(東京)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증권사 투자설명회 같은 강의가 진행됐다.

강사는 증권 전문가가 아닌 이 학교의 교사다. 그는 일본 정부 및 증권업협회가 2001년부터 추진한 ‘투자지식 교육 프로젝트’의 특별 단기연수 과정에 참여해 주식에 대해 배웠다.

이런 강의는 ‘일본 국민도 주식 투자에 대해 제대로 알자’는 주제로 고교는 물론 구청 문화센터 등 일본 전역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 1월 마이니치신문에는 ‘예금에 편중된 개인 자산의 이동’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저축을 미덕으로 강조해 온 일본이 점차 투자 국가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투자로 눈을 돌리는 일본인

과거 일본 국민의 저축열은 ‘지독’했다. 돈이 생기면 무조건 은행에 맡길 정도였다. 풍부한 은행의 돈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재건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은행에 맡기는 돈이 늘어나면 금리가 떨어지게 된다. 1990년대 장기 불황이 시작되면서 은행의 돈은 돌지 않고 쌓여만 갔다. 경기는 침체됐고 금리는 더 떨어졌다.

금융시장이 이렇게 변해도 일본 국민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자율이 떨어지자 ‘돈 불리기가 이전만큼 쉽지 않으니 더 열심히 모으자’며 악착같이 저축했다. 금리가 사실상 제로(0%)인데도 저축을 더 열심히 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일본의 저축률은 1980년대 중반까지 미국이나 유럽의 갑절 이상이었다. 1990년대 중반에도 개인 금융자산에서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를 웃돌았다.

일본 정부는 금리를 낮추는 것만으로는 국민의 자산 구조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일본 정부가 금융회사의 도움을 받아 마련한 대안이 ‘투자지식 교육 프로젝트’다. 이런 노력 끝에 일본인의 금융자산은 2003년부터 저축에서 투자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에 따르면 일본인의 금융자산에서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56.5%에서 지난해 말 51.9%로 떨어졌다. 반면 투자신탁과 주식, 채권의 비중은 같은 기간 10%에서 17%로 높아졌다.

노무라증권 영업기획부 오가와 마사키(小川正毅) 과장은 “개인 금융자산의 구조 변화는 해를 거듭할수록 뚜렷해지고 있다”며 “은행을 통한 주식 관련 상품의 판매도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구세대가 끌고 신세대가 민다

일본에서는 은퇴를 앞둔 50대 후반 연령층과 사회에 막 뛰어든 젊은 세대가 ‘저축에서 투자로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1940년대 후반 베이비붐 세대인 50대 후반은 30여 년간 일본 경제를 이끌며 꾸준히 재산을 모았다. 이 세대가 정년퇴직을 앞두고 주식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각 증권사 지점에서 저녁마다 열리는 주식 투자 강연회에 참석하는 사람은 대부분 50대다.

사회 초년병 세대는 교육을 통해 장기 투자 마인드를 갖춘 사람들이다.

음료 제조회사에서 일하는 하야시 교코(林恭子·33) 씨는 “지난해부터 주식이나 펀드 투자를 시작한 직장 동료들이 부쩍 늘었다”며 “젊은 세대에게 투자는 낯설지 않은 재테크 수단”이라고 말했다.

보험회사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는 마쓰이 가에(松井佳惠·30) 씨도 “해마다 회사와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처지에 국민연금만으로는 앞날이 너무 불안하다”며 “어떻게든 매달 여윳돈을 남겨서 적립식 펀드에 넣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정부의 오랜 노력 끝에 투자를 저축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새로운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증권 1번가인 오데마치(大手町)에서 양복을 쫙 빼입고 다니는 증권맨들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졌다.

삼성증권 김지영 대구지점장은 “탄탄한 금융지식을 갖추고 투자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젊은 세대가 저축에서 투자로 바뀌는 일본의 자산관리 문화를 주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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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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