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무장조직 외국인 납치 왜 했나]反이스라엘 시위

  • 입력 2006년 3월 16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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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용태영 특파원이 납치됐다 풀려난 사건의 이면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자치권을 무시하고 예리코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PFLP) 지도자를 끌고 간 데 대해 PFLP 측이 외국인 납치로 맞서면서 용 특파원이 피랍됐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보안부대의 아베드 사타리 대변인은 “이스라엘이 예리코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PFLP 지도자 아메드 사다트의 신병을 인수한 것에 대한 항의 표시로 외국인들을 납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장단체들이 자신들의 뜻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외국인들을 납치했다는 얘기다.

결국 PFLP 측이 납치한 사람들을 하루 만에 풀어준 것은 이스라엘의 부당성과 함께 자신들의 의사를 충분히 알린 데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 등 국제사회의 압력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선거 전략?=이번 사건의 발단은 이스라엘이 사다트 신병을 인수하기 위해 예리코 교도소를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7일 예리코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다트의 석방 가능성을 언급한 지 일주일 만에 교도소를 공격했다.

이스라엘은 “2001년 10월 레하밤 제에비 이스라엘 관광장관을 암살한 범죄자의 응징”이라고 공격 이유를 밝혔다.

그 이면에는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대행이 이끄는 카디마당이 28일로 예정된 총선에서 보수 세력의 이탈을 막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치세력들은 보수 세력의 표를 결집하기 위해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전략을 종종 구사해 왔다.

뇌중풍(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아리엘 샤론 총리도 2000년 9월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을 방문해 팔레스타인인들의 ‘제2차 인티파다(반이스라엘 무장봉기)’를 유발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샤론 총리가 이끌던 리쿠드당은 이듬해 총선에서 승리했다.

▽이-팔 긴장고조=이번 사태를 계기로 하마스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과 대화보다는 ‘대립의 각’을 세울 가능성이 크다. 실제 팔레스타인 측은 이스라엘군의 교도소 공격에 항의해 15일 가자 및 요르단 강 서안지구 내 모든 학교와 상점의 문을 닫고 총파업에 들어갔다.

이스라엘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 경계태세 수위를 높이는 한편 사다트 등 6명을 재판에 회부하겠다고 밝히는 등 양측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이스라엘과 평화 협상을 주장해 온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됐다. 이스라엘이 그를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권력 누수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측 평화협상 대표를 맡아 온 사이브 에레카트는 “아바스 수반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내 온건파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 PFLP는 어떤 조직

PLO내 과격파지만 하마스보다는 온건

KBS 용태영 특파원을 납치했다 풀어준 조직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한 계파인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PFLP)의 무장조직이다.

PLO의 최대 계파는 마무드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이 속한 파타. PFLP가 두 번째, 팔레스타인민주해방전선(DFLP)이 세 번째로 규모가 크다.

팔레스타인 정치 조직은 대개 무장조직들을 두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파타 산하의 ‘알 아크사 순교자 여단’, 하마스 산하의 ‘이즈 알 딘 알 카삼 여단’이다. PFLP도 ‘아부 알리 무스타파 여단’ ‘체 게바라 여단’ 등을 두고 있다. 이번 납치는 ‘체 게바라 여단’이 자행한 것.

PFLP는 PLO 내에선 급진적인 단체로 통한다. 그 급진성 때문에 1993년 오슬로평화협상을 거부하고 PLO를 탈퇴하기도 했으나 1999년 PLO에 재합류했다. PFLP는 더욱 급진적인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가 성장하면서 쇠퇴했다.

PFLP는 1970년 ‘스카이잭 선데이(공중납치의 일요일)’사건으로 유명하다. 같은 해 9월 6일 비행기 3대를 동시에 납치하고 사흘 뒤 비행기 1대를 또 납치해 강제 착륙시켰다. 사망자는 없었지만 이 사건은 요르단이 팔레스타인 진압에 나선 ‘검은 9월’ 충돌 사건의 원인이 됐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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