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바레인 ‘실용주의 개혁’ 현장을 가다

  • 입력 2006년 2월 2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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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마천루 두바이 시내 중심가인 셰이흐자이드 도로를 따라 고층 빌딩이 빽빽하게 솟아 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중동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두바이=손효림  기자
사막의 마천루 두바이 시내 중심가인 셰이흐자이드 도로를 따라 고층 빌딩이 빽빽하게 솟아 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중동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두바이=손효림 기자
《바레인과 두바이는 종교적 색채가 짙은 중동 이슬람권 국가 가운데 상당히 이색적 존재로 꼽힌다. 양국 정부는 국토가 좁고 석유 등 부존자원도 부족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개방과 규제완화만이 살 길이라고 판단했다. 이 같은 실용주의적 선택은 큰 성과를 거뒀다. 이들 국가에서는 이슬람권의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한 요인으로 꼽히는 종교적 원리주의를 찾기 어렵다.》

■ 두바이 상전벽해 신화

11일 밤 두바이 공항.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어깨를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정도로 승객들로 넘쳐났다.

거리에는 ‘전 세계 크레인의 20%가 두바이에 와 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곳곳에서 ‘땅 땅’ 소리를 내며 대형 건물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인도 출신으로 물류업체인 시트레이드를 경영하는 알바리스 칸 사장은 “15년 전 두바이에 왔을 때만 해도 황량한 모래사막뿐이었는데, 어느 새 건물들이 나무처럼 쑥쑥 자라 빌딩 숲을 이뤘다”고 말했다.

대형 쇼핑몰인 에미리트 몰에 있는 인공 스키장 ‘스키 두바이’에는 눈썰매와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모하메드 왕은 석유 고갈에 대비해 2000여 명의 인재로 싱크탱크를 구축해 2011년까지 ‘석유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 경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세계 유일의 7성(星) 호텔인 돛단배 모양의 버즈 알 아랍을 지어 랜드마크로 활용하는가 하면 인공섬인 야자수 모양의 ‘팜 아일랜드’와 세계 지도 모양의 ‘더 월드’도 만들어 분양하고 있다.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두바이’와 디즈니랜드를 능가하는 테마파크 ‘두바이랜드’도 한창 건설 중이다.

두바이관광청은 외국기업인 및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393개에 이르는 두바이 호텔의 지난해 평균 객실 점유율이 86%로, 뉴욕(83%)과 싱가포르(80%)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또 두바이 국제금융센터와 국제금융거래소를 통해 금융 허브 전략도 본격화하는 한편 제조업체 유치도 서두르고 있다.

■ 바레인 “개방만이 살길”

사막의 골프장 바레인의 ‘사막 골프장’에서 한 직원이 모래로 만들어진 ‘그린’을 정리하고 있다. 풀 한 포기 자라기 어려운 척박한 환경에서 골프장을 만든 발상이 눈에 띈다. 바레인=손효림 기자
10일 바레인 엘리트 스위트 호텔 로비. 흰색 전통 복장을 입은 남성과 검은색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들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호텔 관계자는 “대부분 인근 사우디아라비아인들로, 규제가 많고 즐길 곳이 없는 사우디아라비아를 피해 자유롭게 쇼핑과 관광을 즐기러 온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인구가 70만여 명밖에 안 되는 데다 자동차로 반나절이면 돌아볼 수 있는 바레인에 60개가 넘는 중대형 호텔이 자리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페르시아만을 가로질러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잇는 다리는 두 나라로 넘나드는 사우디 자동차의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바레인은 1932년 중동에서 최초로 석유를 발견했지만 보유량이 적어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다.

국토 면적이 강화도의 두 배가 약간 넘을 정도로 좁은 데다 석유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파악한 바레인 정부는 ‘금융 허브’ 구축에 박차를 가해왔다.

현재 바레인에는 24개 상업은행과 37개 투자은행 등 367개 해외 금융회사가 진출해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업들과 거래한다.

바레인은 또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오만과 함께 결성한 걸프협력회의(GCC)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4년 9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외환은행 바레인지점 이재호 차장은 “외국 금융 기관은 바레인에 진출할 때 자본금 규모 등 규제가 전혀 없으며 따로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며 “바레인 정부는 기업이 마음껏 이용하고 국민들을 고용해 일자리를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두바이·바레인=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집값 상승등 성장痛… 물류-교통난 해결 과제▼

최근 바레인은 두바이의 거센 추격으로 금융 허브로서의 위상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2009년까지 금융센터와 호텔, 주택, 레저 기능 등을 묶은 바레인 금융항(BFH)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또 월드트레이드센터 건설을 진행하며 물류 거점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금융을 제외하고는 물류, 교통망이 취약해 중동의 홍콩, 싱가포르를 꿈꿨던 당초 계획은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상당수 중동 국가들이 그러하듯 바레인도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정권을 잡은 소수 수니파와 소외된 다수 시아파 간 갈등이 내재된 상태다.

두바이도 급속한 성장으로 인해 주택 가격이 급등하고 교통 체증이 심해지는 등 ‘성장통(成長痛)’을 겪고 있다.

최근 주택 가격이 3년 전에 비해 30∼40%나 오르자 정부는 주택 임대료가 15%를 넘지 못하게 규제하고 나설 정도였다.

또 대중교통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출퇴근 시간에는 심각한 교통 체증이 빚어져 경전철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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