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책의 향기’ 유럽을 사로잡다

  • 입력 2005년 10월 21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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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키 두배 백과사전 조형물2005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설치된 브록하우스 백과사전 조형물 사이를 20일 관람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브록하우스 백과사전은 독일을 대표하는 백과사전으로, 이번 도서전에는 어른 키의 두 배에 달하는 350cm 높이의 특수 제작된 모형이 전시됐다. 프랑크푸르트=AP 연합뉴스
어른키 두배 백과사전 조형물
2005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설치된 브록하우스 백과사전 조형물 사이를 20일 관람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브록하우스 백과사전은 독일을 대표하는 백과사전으로, 이번 도서전에는 어른 키의 두 배에 달하는 350cm 높이의 특수 제작된 모형이 전시됐다. 프랑크푸르트=AP 연합뉴스

“Sehr sch¨on(정말 아름답다는 뜻의 독일어)!”

20일 오전(현지 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마인 강변의 시립공예박물관. ‘조선 불교회화전’과 ‘조선 백자전’을 감상하던 독일인 관람객들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불교회화 전시실의 어둑어둑한 분위기와 백자 전시실의 밝고 깨끗한 분위기가 대조를 이루어 관람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디터 얀젠(제약회사원) 씨는 “전통과 현대가 깨끗한 이미지 속에 어우러진 느낌”이라며 “백색의 단순함이 오히려 모던한 현대 감각을 보여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전통문화의 색(色)과 선(線), 뛰어난 미감이 독일을 사로잡고 있다. 18일 개막한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한국 주빈국 행사가 한창인 이곳 프랑크푸르트. ‘대화와 스밈’이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한국 문화의 매력이 유럽인의 가슴에 조용히, 그러나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18일 오후 알테 오퍼 프랑크푸르트 대극장에서 열린 개막공연 ‘책을 위한 진연(進宴)’은 화려한 색채, 정중동(靜中動)의 조화, 장엄한 분위기로 유럽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한국의 궁중문화에 매료된 3000여 명의 관객은 10분 가까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주빈국관 앞 아고라 광장에서 펼쳐지는 각종 한국문화 체험 행사도 인기다. 김치 담그기와 시식, 전통차 시음, 김밥 만두 시식, 목판 찍어보기, 활자 만들어보기, 투호놀이 등 다채로운 행사에 참가한 독일인들은 “Macht Spass(재미있다)!” “Es schmeckt gut(맛있다)”란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시내 곳곳에선 고품격의 한국 문화 행사들이 펼쳐지고 있다. 대표적인 행사는 마인 강변 통신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만남-구텐베르크 이전 한국의 금속활자 문화’.

이곳을 찾은 독일인들은 “한국의 ‘직지심경’(1377년)이 ‘구텐베르크 성경’(1455년)보다 더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걸 몰랐다”며 놀라는 모습이었다.

도서전 박람회장 내 주빈국관과 한국관을 찾는 사람도 많아 “1990년 일본이 주빈국 행사를 치른 이래 이번이 최고의 주빈국 행사”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요슈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도 20일 오전 주빈국관을 방문했다.

한편 시내 북쪽의 그뤼네부르크 공원에선 ‘한국의 정원’을 조성하는 공사가 마무리 단계(11월 말 개장 예정)에 접어들었다. 공원에 세워지고 있는 한국 전통가옥의 쫙 펼쳐져 올라가는 추녀마루 선을 유심히 살펴보던 이웃 주민 안네 파우스트(여) 씨는 “돌을 다듬어 축대를 쌓고 나무를 올려 조립하면서 지붕의 선이 하나둘 생겨나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하다”고 말했다. 현장 책임자인 강창식 이우산업건설 차장은 “한국인의 손재주가 대단하다고 말하는 독일인이 많다”며 “개장하면 독일에 한국문화를 알리는 중요한 공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프랑크푸르트=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直指의 전통에 놀라고 U북 기술에 찬사▼

■ 주빈국관 이모저모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박람회장 주빈국관은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과 금속활자를 만들어낸 한국 인쇄문화의 전통, 최첨단 정보기술(IT)을 이용한 출판문화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의 책 100권’, 디자인이 뛰어난 책 100권을 비롯해 세계 최고 목판 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팔만대장경, 승정원일기 등 한국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보여 주는 자료가 전시돼 있다.

청동기시대 거석(巨石) 모양의 조형물 24개를 세운 뒤 여기에 ‘한국의 책 100권’과 그 책의 내용을 볼 수 있는 개인휴대단말기(PDA) 100대를 설치해 놓았다.

PDA에 들어있는 내용을 곧바로 인쇄해 책으로 만들어보는 코너도 관심거리.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책을 만들 수 있는 개인맞춤형(POD)시스템을 이용한 것. 유비쿼터스(ubiquitous)의 머리글자를 따서 U북이라고 명명했다.

이것은 한국의 앞선 정보기술 없이는 불가능한 일. 종이책의 한계를 뛰어넘어 책의 미래를 전망해 보는 자리라는 점에서 전 세계 출판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18일 이곳을 둘러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위르겐 보스 조직위원장은 “거석 위에 책을 올려놓는다는 아이디어, 전체적인 디자인과 미감이 참신하다”고 평가했다.

한국 작가들의 문학 강연회 및 토론회도 계속 열리고 있다. 시인 고은 씨를 비롯해 김지하 정현종 이문열 서정인 김원일 오정희 은희경 조경란 김연수 씨 등 한국 작가 30여 명이 참가 중이다. 주빈국관 행사를 치르고 난 뒤 2, 3년 안에 그 국가에 노벨 문학상이 돌아간 경우가 많아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대목도 있다. 우선 시내의 거리 홍보가 부족하다. 전철에 광고물이 부착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한국문화 축제 분위기를 알리기엔 부족한 편. ‘직지심경’이 전시되는 마인 강변 통신박물관 앞 거리엔 홍보 플래카드조차 붙어 있지 않다.

프랑크푸르트=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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