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자본 한국으로… 한국으로…

  • 입력 2005년 8월 1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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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은 저래도 하룻밤에 100억∼200억 원을 모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12일 오후 3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외곽에 있는 인니화예총회에서 열린 한국 투자설명회.

20평 남짓한 회의실을 빽빽이 채운 화상(華商·화교자본가) 50여 명의 수수한 옷차림을 보고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자 인도네시아 궈지(國際)일보 해리 루커스 기자가 이렇게 귀띔했다.

이 행사는 10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제8회 세계화상대회를 앞두고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아시아지역 화교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가진 민관합동 투자설명회. 올해 화상대회는 당초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열리기로 돼 있었으나 정부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유치에 적극 나서 한국으로 방향을 돌렸다.


8일부터 13일까지 대만, 홍콩, 마카오, 인도네시아를 돌면서 열린 투자설명회를 동행 취재한 결과 현지에서 만난 화상들은 한국 투자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 화교자본 왜 한국에 관심 갖나

“경쟁이 워낙 심해 금융과 유통 등 서비스업만으로는 사업을 유지하기 힘들어졌어요. 사업 지역을 중국 밖으로 확대하려고 합니다.”

홍콩 투자설명회에서 만난 한 화상은 투자설명회에 참가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적절한 투자 대상이 없어 고민하는 화상은 이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1990년대 말부터 동남아시아에 자유화 개방화 바람이 불면서 이 지역에서 금융, 부동산, 유통 등 서비스부문을 독점해 온 화교자본은 도전에 직면했다.

홍콩의 대(對)중국 투자 컨설팅업체인 미아연합그룹 피터 첸 회장은 “중국 본토에 몰렸던 화교자본이 최근 한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면서 “정보기술(IT) 등 산업기반이 잘 돼 있고 소비자의 구매 수준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동남아 곳곳으로 확산된 ‘한류(韓流)’로 한국과 인연을 맺으면 새로운 사업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작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전자제품 제조업을 운영하는 판디 왕 사장은 “인도네시아도 한류 열기가 대단해 한국 물건이면 뭘 내다 팔아도 잘 팔린다”면서 “지금은 부정기적으로 물건을 받아오고 있지만 앞으로 인천에 사무실을 내 수입 규모를 확대하려 한다”고 말했다.

○ 서비스산업 투자가 최대 관심

한국 정부가 인천경제자유구역 내 영종지구와 청라지구에 추진하고 있는 차이나타운과 아시안빌리지 프로젝트는 이번 투자설명회의 최대 관심사였다.

총자산이 10조 원이 넘는 인도네시아 최대 금융그룹인 리포(LIPPO)그룹 리원정(李文正) 회장은 “사업타당성 검토를 위해 한국에 임원을 파견한 결과 아시안빌리지 사업계획이 잘 짜여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투자할 뜻을 밝혔다.

청라지구는 인천공항고속도로 영종대교 인근 541만 평 간척지로 이 가운데 25만 평이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관광객을 흡수할 수 있는 아시안빌리지로 개발된다.

화상들이 이곳을 주목하는 이유는 연인원 500만 명에 육박하는 아시아 관광객과 소비수준이 높은 한국 수도권 인구 1000만 명을 겨냥할 수 있기 때문.

홍콩 여행전문기업 홍타이트래블 재키웡 투자고문은 “현재 중국의 해외여행객은 연인원 2500만 명이지만 10년 내에 50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면서 “한국도 이들을 겨냥한 관광 인프라를 갖추면 싱가포르와 마카오에 몰리는 중국 관광객을 더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도네시아 유력기업인 인다디그룹 우더인(吳德音) 회장은 “중국 관광객들은 5성급 호텔보다는 저렴한 호텔에 머물면서 맛있는 정통 중국음식을 먹고 싶어한다”면서 “한국은 아직 중국 관광객의 기호에 맞는 식당과 호텔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오히려 좋은 투자 기회”라고 설명했다.

○ “한국 투자환경 더 개선해야”

하지만 일부 화상은 “한국은 각종 규제가 많아 사업이나 투자를 하기에 조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게임 등 소프트웨어 개발에 투자하는 대만 그랜드캐피털그룹 궈완치(郭琬璂) 투자고문은 “한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를 대상으로 투자처를 물색 중”이라며 “하지만 규제가 많아 투자는 쉬워도 수익을 내기는 힘든 것으로 안다”고 지적했다.

대만 전기전자공업협회 정푸슝(鄭富雄) 회장은 “한국에서는 골프채를 들고 출국하면 세관원이 가방을 더 샅샅이 뒤진다는 말이 있다”면서 “한국은 아직 부자나 돈 버는 것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화상들은 이번 투자설명회와 같은 행사를 많이 열 것을 주문했다.

홍콩 유력기업인 천성국제그룹 리진쑹(李金松) 회장은 “신뢰도 높은 한국기업을 찾아 사업을 확대하고 싶지만 채널을 찾기가 쉽지 않다”면서 “10월에 열리는 서울 화상대회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이베이·홍콩·자카르타=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화교자본 규모는“전세계 2000조원 자금 쥐락펴락▼

전 세계 화교들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어림잡아 2조 달러(약 2000조 원)로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배에 이른다.

세계 화교 인구는 대만, 홍콩, 마카오의 중국인까지 포함하면 약 6000만 명. 세계 130여 개국에 퍼져 있는 이들은 끈끈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범(汎)중화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 경제는 사실상 이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화교는 동남아 인구의 10%에도 못 미치지만 소속 국가에 따라 경제력의 50∼90%를 장악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상위 25대 기업 가운데 23개가 이른바 화교 기업이고, 인도네시아는 상위 10대 기업 모두가 화교계이다.

반(反)중국 정서가 강한 말레이시아에서도 최대 재벌인 케리그룹을 포함해 많은 유력 기업이 화교자본이다.

화교자본은 중국 경제 발전의 ‘실탄’이기도 하다. 중국 개방 초기에 화상들은 고국인 중국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최근 20년간 중국이 유치한 외국인직접투자(FDI)의 절반 이상은 이들이 투자한 것이다.

또 작년 말까지 중국의 외자기업 2만8000여 개 중 60% 가까운 1만6500개가 홍콩, 마카오, 대만에서 투자한 회사다.

아시아 전체가 외환위기에 빠져 휘청거리던 1997년 당시 중국 경제만이 건재할 수 있었던 것도 화교자본의 ‘뒷심’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화교는 아시아지역에서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리콴유(李光耀) 고촉통(吳作棟) 전 싱가포르 총리 등이 대표적인 화교 출신 정치인들이다.

건국대 양필승(梁必承·중국사) 교수는 “화교들이 세계 곳곳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인 특유의 근면함과 검소함, 뛰어난 상술, 현지문화 적응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타이베이·홍콩·자카르타=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세계華商연맹 딩카이언 회장▼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화상(華商) 네트워크를 활용했다면 실패한 기업은 하나도 없었을 겁니다.”

세계 화상조직연맹 딩카이언(丁楷恩·사진) 회장은 11일 홍콩에서 열린 유력 화상 초청 투자설명회에서 한국 기업과 화상의 비즈니스는 ‘윈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딩 회장은 대만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을 갖고 홍콩에서 대(對)중국 투자활동을 하는 이색 경력의 소유자.

다양한 국적 편력에서 드러나듯 그는 중국, 대만, 홍콩, 동남아지역 화상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어 이 지역 화상들의 대부(代父)로 일컬어진다.

그는 “화상은 동아시아 각국에서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어 한국의 선진 기술과 협력할 부분이 많다”면서 “한국 대기업의 브랜드 관리 능력과 화상의 실속 있는 중소기업 경영 노하우도 서로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은 화교자본이 정착하지 못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일 만큼 외국인에 대한 견제가 심하다”면서 “최근 한국 정부가 외국자본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화상들 사이에서 이런 부정적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10월 9일부터 나흘간 서울에서 열리는 제8차 화상대회에서 많은 한국 기업과 ‘대화’하기를 희망했다.

“이번 서울 대회에는 3000명이 넘는 화상이 참여해 역대 어느 대회보다 기대가 큽니다. 특히 한국 기업들과 우정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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