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권효]관광상품 전락한 上海임정 청사

  • 입력 2004년 11월 16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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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방문길에 12일 상하이(上海)시 루완(盧灣)구 마당(馬當)로 푸칭(普慶)리 4호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찾았다. 청사 앞에는 한국인 관광객을 태운 차량이 쉴 새 없이 이어졌고 좁은 골목은 관람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국말을 잘하는 상하이시 여직원이 먼저 청사 바로 옆에 마련된 영상실로 안내했다. 이곳에서 임시정부의 활동상에 관한 비디오를 10분가량 본 뒤 이 직원이 시키는 대로 김구(金九) 선생의 동상 앞에서 3초가량 기계적으로 묵념을 했다.

곧이어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청사 안으로 들어갔으나 워낙 비좁아 뒷사람에게 떠밀리기 일쑤였다. 1990년대 초에 복원된 3층짜리 목조 건물 청사는 관광객들이 몰리자 무너질 듯 삐걱거렸다. 나무계단은 끝 부분이 떨어져 나갔을 정도로 닳았다.

2층의 김구 선생 집무실과 임정요인 사무실에 들어서자 관광객들의 걸음 때문에 집기가 흔들릴 정도였다. “이러다간 여기가 남아나지 않겠다”고 걱정하는 소리와 “좀 빨리 갑시다”는 짜증 섞인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코스 마지막에는 성금함도 놓여 있었다. 관광객들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르고 무심코 돈을 넣기도 했다. 청사 한편에는 관광상품 등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임정 청사는 이제 상하이를 찾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중국돈 20원(약 2000원)을 내고 들르는 필수 코스가 됐다. 연간 20만명 이상이 찾고 있다고 이곳 직원은 귀띔했다.

이 소란스럽고 낡은 임정 청사를 오르내리면서 ‘남의 나라 땅에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며 독립을 꿈꾸던’ 선조들을 잠시나마 경건하게 생각해 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동행했던 한 대학 교수는 “헌법 전문에도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돼 있는데 임정 청사가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개탄했다.

임정 청사의 소유권과 운영권은 현재 상하이시가 갖고 있다. 청사를 나서면서 우리의 ‘자존심’이 남의 나라의 ‘관광상품’으로 전락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이권효 사회부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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