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재건기금은 ‘눈먼돈’…최소 88억달러 부실운용 의혹

  • 입력 2004년 8월 23일 19시 04분


코멘트
미국이 전쟁으로 황폐해진 이라크를 복구하기 위한 이라크 재건기금을 멋대로 사용한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또 당초 약속과는 달리 이라크 재건에 미국 돈을 거의 투입하지 않고 이라크 재산을 사용해 온 것으로 나타나 미국의 도덕성, 나아가 전쟁의 당위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부실 운용 의혹=6월 말 주권 이양 전까지 14개월 동안 이라크를 통치한 연합군 임시행정처(CPA)에 대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라크 개발기금(DFI) 중 최소한 88억달러가 부실 운용된 의혹이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21일 보도했다.

CPA 감찰부의 한 관계자는 “DFI 감사가 완료됐으며 결과 공개에 앞서 국방부의 논평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고서 내용은 미 언론인 데이비드 해크워스의 웹 사이트(www.hackworth.com)에 이달 초 유출됐으며 미 행정부의 한 관리는 이 내용에 대해 “믿을 만한 정보”라고 확인했다.

이라크 석유판매 대금과 유엔 석유식량계획 예산 잉여금 등으로 조성된 DFI에 대한 의혹 제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유엔은 6월 CPA 산하 이라크 각 부처들이 수천명의 유령 인부에게 월급을 지급했다고 밝힌 바 있다. 월급 대장에 등재된 경호원은 8206명에 이르지만 7.3%에 불과한 603명만 경호원으로 확인됐다.

또 7만4000명의 수비대에 월급을 지급한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 수비대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미국을 위한 돈잔치?=지난해 10월 미 의회가 승인한 이라크 재건기금(2003년 10월∼2004년 9월)은 184억달러(약 21조1000억원). 하지만 8월 현재까지 사용된 금액은 2.9%인 5억4400만달러(약 6200억원)뿐이다. 올 상반기에만 80억달러를 사용하겠다던 미 정부의 약속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미국이 핵심사업이라며 32억달러를 배정한 안보 분야에 지출된 돈은 1억9400만달러로 6%에 불과하다.

이라크 국민에게 필수적인 상수도 사업에 배정된 1억8400만달러는 미국 대사관 운영경비로 전용됐다. 민주화 재건 비용으로 책정된 2900만달러는 CPA 행정비용으로 대체됐다. 관개사업비 2억7900만달러, 댐 보수 및 건설비 1억5200만달러는 한 푼도 집행되지 않았다. 의욕적으로 제시한 2300여개 재건 프로젝트 중 6.1%(140여개)만이 진행 중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불안한 치안상황 때문에 재건 프로젝트 계약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재건기금의 집행이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재건기금을 둘러싼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사이의 불협화음으로 업무 협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4일 보도했다.

▽이라크 돈으로 잔치=CPA는 미국 돈은 거의 사용하지 않은 반면 석유판매대금 등으로 조성된 DFI는 마구 쓴 것으로 나타났다. 6월 말 현재 200억달러(약 23조원)의 DFI 가운데 114억달러(약 13조1000억원)가 사용됐다.

남은 돈 중 이미 용도가 결정돼 있는 금액까지 합하면 190억달러(약 21조8000억원)로 95%에 이르며 미국의 재건기금을 초과한다. 특히 주권 이양 전 2개월 동안 60억달러(약 6조9000억원)가 넘는 돈이 무더기로 집행됐다.

CPA는 재건사업 계약 37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9건을 미국 업체에 할당했으며 사업자금 22억6000만달러 중 최소 85%인 19억2000만달러를 DFI에서 지출했다. 재건을 빌미로 이라크 재산으로 미국 기업의 배를 채운 셈이다. 워싱턴포스트는 “CPA는 초기엔 미국 정부 예산을 사용했지만 딕 체니 부통령이 경영한 적이 있는 핼리버튼사에 대한 특혜 의혹이 일면서 회계감사가 허술한 DFI를 마구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