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증가 없는 이상한 성장… ‘반짝 경기’ 논란

  • 입력 2003년 11월 17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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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는 침체에 마침표를 찍고, 성장궤도로 들어섰나. 객관적인 지표는 완연한 상승세다. 미국 경제는 이미 2001년 말 바닥을 친 것으로 분석되며, 장기불황에 신음해 온 일본도 플러스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도 가을 들어 플러스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아직 체감경기는 아니다. 일자리가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용증가 없는 경기회복(jobless recovery)’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월가의 장밋빛 전망=월 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주말 53명의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에게 내년 1·4분기(1∼3월) 성장률 전망치를 물었다. 평균치는 4.1%로 불과 한 달 전의 3.9%보다 높아졌다. 전문가들이 낙관적 전망을 하는 것은 3·4분기 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2%(연율 기준:3분기 성장세가 지속된다면 연간 7.2% 성장한다는 의미)로 치솟는 등 각종 지표가 뚜렷이 개선된 데 따른 것이다.

지난달 미국의 도매물가 상승률은 0.8%로 7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중국 발(發) 디플레이션 위기론은 이미 힘을 잃었다. 소비자 신뢰도와 산업생산도 개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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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증시는 어느덧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언제쯤 금리인상을 내비칠까’ 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선순환 상승세=14일 발표된 일본 경제지표도 긍정적이다. 3·4분기 일본 경제는 전 분기보다 0.6%(연율 2.2%) 성장해 전문가들의 예상치(0.3%)를 훌쩍 넘었다. 7분기 연속 성장세다. 일본인들은 “10여년을 짓눌러온 장기불황이 드디어 끝난다”며 조심스럽게 낙관론을 펴고 있다.

유로권의 양대 축인 독일과 프랑스의 경제도 3·4분기 들어 경기위축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도 같은 시기에 각각 0.5%와 0.1% 성장했다.

일본과 유럽경제의 완만한 회복세는 미국시장이 살아나 투자가 확대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진 뒤 처음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수출주도형’ 아시아경제는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이끌고 있다. 3·4분기 중국의 성장률은 9.1%로 과열이 염려스러울 정도. 한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각국이 중국 투자를 늘려 미국 유럽에 재수출하는 방식으로 선순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고용 없는 회복’=미 국가경제조사국(NBER)은 최근 미 경기가 2001년 11월 바닥을 친 것으로 분석했다. 이후 올 6월까지 GDP는 4.5% 증가했다. 그런데도 일자리는 여전히 적다. 실업률은 아직도 6%대이고 미국 내 일자리는 2001년 3월보다 여전히 240만개나 부족하다.

고용증가 없는 경기회복은 이번이 두 번째. 90년대 초반 1년반 동안의 경기상승기에도 일자리는 늘지 않았다. 미 뉴욕 연방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고용증가는 경기상승보다 3개월 정도 뒤처져 나타나는 게 통례지만 90년대 이후 이 패턴이 깨졌다”고 분석했다.

구조조정에 따른 생산성 증가로 기업이 적은 인력으로 수요증가에 대처할 수 있게 돼 아직 본격적인 고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對)테러전쟁과 월가의 잇따른 스캔들로 불확실성이 커진 것도 고용증가를 막는 요인이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경기회복세는 공화당 행정부의 세금환급과 낮은 이자율에 힘입은 ‘반짝 경기’”라며 “일자리가 늘지 않는 한 안심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다만 상승세가 심리적으로 경제 전반에 확산되면 고용사정도 개선될 여지는 있다. 정세은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미국 기업의 투자가 점차 늘고 있다”며 “따라서 경기회복이 조만간 고용증가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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