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즈펠드가 제네바합의 침묵하는 이유

  • 입력 2003년 4월 30일 16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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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 내에서 북한에 대해 가장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71)이 1994년 미국이 북한과 체결한 제네바 핵동결 협정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미국 내 대북 강경파들은 미국이 북한의 핵위협에 놀아난 대표적인 사례로 제네바 합의를 거론하면서 빌 클린턴 전 민주당 행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경제격주간지 포춘은 최신호(12일자)에서 지금까지 럼즈펠드 장관의 발언을 검토한 결과 그가 제네바 합의에 대해서는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그의 전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잡지는 그 이유를 럼즈펠드 장관이 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지어주는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했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그는 90년부터 2001년까지 엔지니어링 다국적 회사인 ABB사의 유일한 미국인 임원(사외이사)으로 재직했다. ABB사는 94년 당시 2억달러(약 2400억원) 규모의 북한 경수로 설계 및 주요 부품 공급권을 따냈다. 이 잡지는 럼즈펠드 장관이 워싱턴 내 로비를 담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ABB사에 몸담았던 관계자들의 증언들은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당시 15명으로 구성된 사외이사진에 속했던 한 임원은 "북한 경수로 프로젝트를 놓고 경합을 벌이던 한 미국 업체가 ABB사가 외국인 소유라는 점을 트집 잡기 시작하자 럼즈펠드 당시 이사가 워싱턴내 로비를 담당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95년까지 ABB사의 전력 사업을 맡았던 고랜 눈드버그도 "돈(럼즈펠드 장관의 애칭)이 개입된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전했다.

ABB사가 '적극적인 로비'로 북한에 공급할 경수로 2기에 대한 설계 및 주요 부품 공급권을 따내고도 이 프로젝트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쉬쉬하려 했다는 부분도 석연찮다.

일례로 ABB사는 95년 미 에너지부에 (프로젝트와 관련) 의례적인 내용의 공문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일반에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럼즈펠드 장관측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포춘는 "언젠가는 그동안의 침묵에 대해 그가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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