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戰爭]바그다드 시가전 만만치않다

  • 입력 2003년 4월 6일 19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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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 개전 이후 가장 처절한 전투가 임박했다. 인구 500만명이 거주하는 바그다드 공방전이다. 군사전문가들은 과거 막대한 인명피해를 냈던 시가전들을 사례로 들면서 아무리 막강한 화력과 장비를 갖춘 미군이라도 쉽게 바그다드를 점령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피로 물든 시가전=20세기 이후 가장 처절했던 시가전은 옛 소련의 스탈린그라드 전투(1942년). 독일군의 포위작전에 맞서 후방보급 교란작전과 게릴라식 시가전으로 일관한 소련군은 결국 보급품이 떨어진 독일군 25만명을 포위, 수세를 공세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미군이 처음으로 겪은 시가전은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 후 벌인 메스 전투. 독일군은 프랑스 동북부에 자리잡은 인구 8만3000명의 소도시 메스에 35개의 요새를 구축해 저항했다. 당시 미군 기갑부대 사령관 조지 패튼 장군의 손자인 로버트 패튼은 뉴욕 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보급품이 끊긴 독일군이 3개월 만에 항복할 때까지 할아버지는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다”며 토미 프랭크스 중부군사령관에게 ‘전철을 밟지 말라’고 충고했다.

▽시가전의 공포=1968년 베트남 후에시(市) 전투도 미군에는 끔찍한 기억. 1개월 동안 막대한 인명피해를 낸 이 전투는 미국내 반전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1993년 미군 18명이 전사한 소말리아 모가디슈 전투는 미국인들의 가슴속 깊숙이 시가전의 공포를 심었다.

시가전의 처절함을 여실히 보여준 전투는 1994년 러시아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한 체첸반군 수도 그로즈니에서 벌어진 시가전. 지리에 어두웠던 러시아군 2000명이 전사한 뒤 러시아는 무차별적으로 도심을 폭격하는 폐허전략으로 전환했다. 러시아군이 두 달 동안 폭격을 퍼부어 민간인 2만5000명이 죽었다.

▽시가전의 함정=당시 러시아군과 달리 이라크전쟁의 미영 연합군은 압도적 화력과 정밀무기, 인공위성 등 입체적인 정보 등으로 무장한 상태.

그러나 시가전은 △압도적인 화력을 시가의 지형에 맞춰 나눠야 하는 데다 △보급이 원활치 않고 △아군끼리의 무선교신이 건물에 막히는 등 전력을 100% 발휘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군사전문가들은 도심에 대한 광범위한 폭격과 이에 따른 민간인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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