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바그다드 긴급르포 3]아랍최대 寺院 건설

  • 입력 2003년 1월 27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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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태기자
권기태기자
《바그다드 시내 이븐 가잘리야 지역의 이라크 최대 모스크(사원) ‘움 알마아릭(모든 전투의 어머니)’. 이곳 별관에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3년에 걸쳐 피 28ℓ를 빼 필사(筆寫)시켰다는 코란 605쪽이 액자에 전시돼 있었다. 26일 방문했을 때는 개보수가 한창이었다. 책임자인 니잘 압델 알은 “코란 구절들은 전쟁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뜻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후세인 대통령의 초대형 사인을 담은 타일 조각품이 있는 연못으로 안내했다. 바그다드에는 이 모스크 규모의 5배나 되는, 아랍 최대의 ‘사담 후세인 모스크’가 건설되고 있다.》

▽곳곳에서 진행된 후세인 우상화〓바그다드 남쪽으로 110㎞ 떨어진 고대 유적지 바빌론.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건설한 왕궁과 공중정원이 있는 곳이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이스라엘(당시 유대왕국)을 정복한 왕이다. 개축공사가 중단된 이곳에는 ‘사담’의 약자와 ‘사담 시대에 개축됐다’고 쓰인 벽돌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 유적 인근의 언덕에는 대통령궁이 있다.

후세인 대통령은 자신과 네부카드네자르 2세를 동일시하고 있는 듯 했다. 실제 이라크 곳곳에선 그가 네부카드네자르 2세와 악수하는 상상화나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전차(戰車)모형에 앉아 있는 사진을 볼 수가 있다.

▼연재물 목록 ▼

- [폭풍전야 바그다드 긴급 르포]권기태/제 2信
- [폭풍전야 바그다드 긴급 르포]권기태/제 1信

바그다드 번화가 사둔 거리의 서점에서는 후세인 대통령이 썼다는 소설 ‘요새’와 ‘자비바와 임금님’이 베스트 셀러였다. 둘 다 우국적인 주인공을 내세운 소설. ‘자비바와 임금님’은 캐나다 동화 작가의 작품을 일부 표절했다는 소문도 있지만 이라크인들은 그의 창작품으로 알고 있다.

디나르화(貨) 지폐에는 모두 후세인 대통령의 얼굴이 들어 있다. 왕정 국가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일이었다.

또 바그다드에는 사담 타워, 사담교(橋), 사담 종합의료단지, 사담 스포츠센터, 사담 공항, 사담 쇼핑센터가 있는가 하면 거리마다 군복이나 양복, 아랍 전통옷을 입은 그의 초상화들이 넘쳐났다.

한 아랍 기자는 “후세인 대통령은 이라크의 독재자일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스타’”라며 “그가 집권한 79년 이후에 철이 든 젊은 층은 그를 ‘영원한 대통령’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동향(同鄕) 측근들의 가족 집단 수용”〓망명한 이라크의 학자는 ‘사미라 알 칼릴’이라는 가명으로 펴낸 책 ‘공포 공화국’에서 “이라크인들은 무서워서 후세인 대통령의 권위에 대항할 엄두를 못 낸다”고 썼다. 공포 통치가 가능한 것은 그가 권력의 요소마다 자신의 혈족들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장남 우다이(39), 차남 쿠사이(36)는 군부 및 정계 실력자다. 쿠웨이트 침공의 주역인 알리 하산 마지드 장군은 그의 사촌동생이며, 대통령 언론담당 고문 바르잔 이브라힘 하산 알 티크리티는 그의 이복동생이다. 이라크 정보부(무카바라트)와 특수보안대는 그의 고향인 티크리트 출신자들로 이뤄져 있다. 특히 정보부도 그의 이복동생 사바위 이브라힘이 책임자다.

한 서방 기자는 “후세인 대통령이 쿠데타를 우려해 이들 측근과 군 간부들의 가족을 바그다드 내 방공호에 집단 수용했다는 소문도 있다”고 귀띔했다. 바그다드에는 1200명씩 수용할 수 있는 방공호가 30여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세인 대통령은 공포 통치를 펴면서도 간간이 ‘암행 감찰’을 통해 ‘감동 이미지’를 만들어 왔다. 한 시민은 “대통령이 혼자 차를 몰고 군 병원에 나타나 환자들을 위로한 이야기, 철도 사무국 직원이 자리를 비우자 대신 전화를 받은 이야기, 수술을 잘못해 산모를 숨지게 한 의사를 문책한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돌고 있다”고 전했다.

▽‘후세인 이후’는 안개 정국〓현재 후세인 대통령은 두 아들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있다. 우다이는 언론인연맹회장, 올림픽위원장으로 문화 체육 언론을, 쿠사이는 군 보안대, 공화국 수비대, 폭동진압부대를 맡고 있다. 한 이라크 전문가는 “우다이가 소유한 일간지 ‘바벨’에 가끔 군 보안대의 부패상이 보도되는 것은 형제간의 알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후세인 대통령 이후 이들 형제의 권력 승계를 용인하지 않을 태세다. 그러나 이들 일가를 대체할 세력이 없다는 게 서방의 고민거리. 한 전문가는 “대체 지도자를 만들어 낼 이라크 내의 중산층 약 300만명이 걸프전이 끝난 뒤 유럽 미국, 그리고 다른 아랍국으로 떠났다”고 말했다. 이라크 인구는 2350만명.

프랑스 ‘르 주르날 드 디망시’지의 대기자 카렌 레종은 “후세인 대통령이 실각하면 미국은 결국 군부와 집권 바트당을 중심으로 군정을 실시했다가 민간 정부를 수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의 반체제 인사 가운데 군 최고사령관 출신으로 96년 덴마크로 망명한 니자르 알 카즈라지, 이라크 최대 가문인 베니 살리히가(家) 출신으로 미국 망명 후 이라크 자유장교운동을 지원하고 있는 나지브 알 살리히 등이 대안으로 꼽힌다.

▼후세인 연보▼

△37년 4월28일 바그다드 북부 티크 리트 지방 알로자 출생

△58년 카심 총리 암살 미수 사건과 관련 투옥, 탈출 뒤 이집트 망명

△63년 카심 총리 피살 후 바그다드 귀환. 외사촌과 결혼

△66년 바트당 사무부총장

△79년 친척인 아흐마드 하산 알 바 르크 대통령 사망 후 집권

△90년 쿠웨이트 침공

△2002년 단독 입후보한 대통령 선거 에서 승리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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