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파워 美대통령]워싱턴-케네디 국민존경 한몸에

  • 입력 2001년 1월 18일 18시 34분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자는 20일 미국의 43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러나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부터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은 42명이 아닌 41명이다.

이는 대통령의 임기를 계산하는 방식이 한국과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대통령이 연임할 경우 이를 한번의 임기로 계산한다. 예컨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경우 1933년부터 1945년까지 3선 연임을 했지만 공식적으론 32대 대통령으로 불린다.

그러나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경우 1885년부터 1889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한 뒤 재선에 실패, 4년 뒤 다시 출마해 1893년부터 1897년까지 2차례에 걸쳐 국정을 이끌었기 때문에 22대 대통령이자 24대 대통령으로 기록돼 있다.

흔히 대통령직을 ‘영욕(榮辱)’이 교차하는 자리라고 하지만 이들 41명의 역대 미국 대통령도 영광만을 누리지는 못했다.

에이브러햄 링컨(16대), 제임스 가필드(20대), 윌리엄 매킨리(25대), 존 F 케네디 대통령(35대) 등 4명은 암살됐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40대)은 저격당했으나 목숨은 건졌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윌리엄 해리슨(9대), 재커리 테일러(12대), 워런 하딩 대통령(29대) 등 4명은 임기 도중 사망했다.

또 재임 중 황제처럼 막강한 ‘파워’를 휘둘렀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37대)은 결국 권력을 남용하다 워터게이트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려 중도에 사임했고 클린턴 대통령도 성추문 관련 위증 때문에 탄핵 위기에 몰렸다가 기사회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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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평가 순위

종합순위대중설득력경제관리도적적 권위대의회 관계비전 제시평등 정의 추구
1링컨F루스벨트F루스벨트워싱턴존슨링컨링컨
2F루스벨트T루스벨트워싱턴링컨F루스벨트F루스벨트존슨
3워싱턴링컨링컨T루스벨트워싱턴워싱턴트루먼
4T루스벨트레이건T루스벨트F루스벨트링컨T루스벨트카터
5트루먼케네디클린턴아이젠하워제퍼슨윌슨클린턴

반면 초대 워싱턴 대통령과 링컨, 케네디 대통령 등처럼 세월이 가도 국민으로부터 변치 않는 숭앙을 받는 대통령도 여러 명이다. 사실 미국처럼 전직 대통령들이 국민적 존경을 받는 국가는 많지 않다.

그렇다면 성공한 대통령과 실패한 대통령을 가른 기준은 무엇일까.

미국의 C―SPAN TV 방송은 지난해 대통령에 관한 역사를 전공한 학자 58명이 1년 간의 분석을 거쳐 내린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평점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워싱턴, 시어도어 루스벨트, 해리 트루먼 대통령 등이 종합 평점에서 1∼5위를 차지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국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 국가의 근간을 바로 세웠다는 것.

워싱턴 대통령은 신생국인 미국이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닦았고 다른 대통령은 전쟁과 경제위기로 국난이 초래됐을 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지도자들이었다.

최근 백악관을 거쳐간 전직 대통령들 가운데는 레이건 대통령이 11위, 조지 부시 대통령이 20위, 지미 카터 대통령이 22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23위를 차지했고 클린턴 대통령은 21위로 평가됐다.

클린턴 대통령은 특히 도덕적 권위 면에선 41위로 최하위를 기록했으나 최근 퇴임을 앞두고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직무수행에 대한 지지도가 66%로 지난 반세기 동안 백악관을 거쳐간 대통령들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는 그가 지난 8년 동안 사상 최장기의 경제호황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분석가들은 “클린턴 대통령은 국민의 존경을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한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美 퍼스트레이디 역할]사회봉사-여성지위 향상 앞장▼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과 위상은 상당히 독특하다.

헌법과 법률은 대통령 부인의 역할 권한 직책 등을 규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통령 부인들은 왕성한 사회운동과 봉사활동 등을 통해 미국 사회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고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데 큰 몫을 해왔다.

미국에서 퍼스트 레이디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율리시스 그랜트 전 대통령(1869∼1877)의 부인 줄리아 여사 때부터. 그 전엔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부인 마사 여사가 ‘미세스 워싱턴’ ‘레이디 워싱턴’ ‘리퍼블리칸 퀸’으로 불리는 등 대통령 부인에 대한 통일된 지칭이 없었다.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과 활동범위는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차이가 난다.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뉴욕 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힐러리 클린턴 여사는 남편인 빌 클린턴 대통령 못지 않은 활발한 정치력과 권력욕 때문에 일찌감치 ‘공동 대통령’이란 평을 들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부인 로절린 여사도 퍼스트 레이디로는 전무후무하게 국무회의에 참석,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국가를 대표해 외국을 순방키도 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여사는 처음엔 “내 관심사는 남편뿐”이라며 빈곤층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그 후 마약추방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전개, 남편의 두번째 임기가 시작되던 85년 무렵엔 지지도가 72%로 남편(64%)보다 높아졌다.

남편보다 인기가 좋았던 퍼스트 레이디로는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의 부인 베티 여사도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이 유방암 치료를 위해 유방을 절제한 사실을 공개, 유방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해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 여권 신장에 큰 기여를 했던 그녀의 인기에 힘입어 포드 선거진영에선 76년 재선에 도전할 때 ‘베티 여사의 남편을 계속 대통령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 정도였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여사는 우아함 젊음 미모 지성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백악관에 대통령 부인을 지원하는 전담 비서실이 처음 생긴 것도 이 때부터.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부인 매이미 여사는 당대 최고의 패션 감각으로 뭇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됐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 바버라 여사는 문맹퇴치 에이즈 환자 구제 등에 치중했고,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부인 팻 여사는 남 앞에 나서기를 싫어했으나 나중엔 백악관 개방 등에 힘썼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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