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라크 화해 발걸음 빨라진다…美제재 피해 동병상련

  • 입력 2000년 10월 11일 19시 10분


이란 외무부의 한 고위 관리는 “하라지 장관은 최근 유엔의 이라크 비행금지조치에 도전해 온 일부 국가들에 동조하기 위해 비행기편으로 이라크에 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하라지 장관이 사이드 알 사하프 이라크 외무장관과 회담할 예정이지만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만날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번 외무장관 회담을 계기로 전쟁 종료 이후 아직 평화협정조차 체결하지 못한 양국 관계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오랜 반목관계〓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란과 이라크는 종교 민족 영토 등의 문제를 놓고 오랫동안 분쟁을 겪어 왔다.

특히 샤트 알 아랍 수로의 영유권을 둘러싼 양국의 갈등은 80년에 발생한 이란―이라크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샤트 알 아랍 수로에 대한 권리는 1937년 국경협정에 따라 이라크가 행사해 왔으나 1968년 영국이 걸프지역에서 철수하면서 이란이 일방적으로 협정을 파기하고 수로를 점유했다. 이라크로서는 페르시아만으로 진출하는 유일한 통로인 이 수로를 이란에 빼앗기게 되자 단단히 별러왔던 것.

두 나라의 종교적인 갈등도 전쟁의 불씨를 지피는데 한 몫을 했다. 두 나라는 모두 이슬람 국가이지만 이란은 시아파가, 이라크는 수니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70년대 말 이란의 호메이니가 이슬람혁명을 일으키자 이라크 내 소수 시아파는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정부 활동을 강화했다. 이를 이란이 지원하고 나서자 이라크는 80년 9월 이란을 전면 침공했다.

양국은 88년 8월 유엔의 중재로 8년간에 걸친 전쟁을 끝내고 90년 10월에는 대리대사급 외교 관계를 재개했지만 이후에도 전쟁 포로와 반정부 활동 지원 문제 등으로 긴장과 충돌이 거듭돼 왔다.

▽화해 배경과 전망〓두 나라의 화해 무드는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비롯됐다. 양국은 모두 오랜 전쟁으로 경제적 기반이 파괴된 데다 미국이라는 공통의 적을 갖고 있다.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서방의 오랜 경제 제재로 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00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어 경제 회복을 위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

양국 관계 정상화 노력의 물꼬가 트인 것은 97년 이란에 개혁파인 하타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부터.

하타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이라크 전쟁포로 1만여명을 송환하는 등 이라크에 대한 화해 제스처를 계속해 왔다. 98년에는 전쟁 이후 처음으로 이란의 순례자들이 이라크내 시아파 성지를 방문했고 이란도 이라크인들이 종교적인 목적으로 이란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지난해에는 양국의 상무장관이 통상 경제 여행분야 협력을 강화하는 3개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전쟁포로문제와 국경지역의 과격파 반정부단체의 분쟁이 양국의 관계 정상화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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