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를 달린다]바이칼호 일대는 동식물 寶庫

  • 입력 2000년 9월 14일 18시 38분


《하바로프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장장 60시간을 달리는 시베리아횡단열차(TSR)가 새벽녘에 발샤야 레취카(큰강)역을 지나자 열차 안이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검푸른 타이가(시베리아의 침엽수림) 사이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면서 거대한 호수가 조금씩 자태를 드러내자 '아, 바이칼'이라는 탄성이 여기 저기서 터져 나왔다. 침대차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창가로 모였다. 창을 열어제치자 물비린내가 물씬 풍겼지만 공기는 오히려 상쾌했다.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바이칼호는 호수라기 보다는 바다 같았다》

타타르어로 ‘풍요로운 호수’라는 뜻의 바이칼호는 한반도 넓이의 7분의 1인 3만1500㎢. 오이 모양으로 호수의 폭이 가장 넓은 곳은 79㎞나 된다. 호수 안에 20여개의 섬까지 떠 있으니 말이 호수지 웬만한 내해(內海) 못지않다.

열차는 이르쿠츠크까지 7시간 동안 바이칼을 따라 바람처럼 달렸다. 정차하는 역마다 상인들이 말리거나 구운 생선을 플랫폼에 들고 와 팔았다.

바이칼호에서 서쪽으로 65㎞떨어진 이르쿠츠크 시내를 관통하는 앙가라강은 바이칼호의 물이 흘러나오는 유일한 강. 1918년 세워진 이르쿠츠크국립대를 비롯한 대학과 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은 바로 바이칼호이다.

이르쿠츠크국립대 환경연구소장인 그리고리 슈페이제르 교수는 평생을 바이칼호 연구에 바친 ‘물박사’로 통한다. 그는 “바이칼은 세계가 힘을 모아 보전해야 할 인류의 자산”이라고 말했다. 연구기관들이 수십년 동안 바이칼을 연구하면서 수자원관리, 생화학, 생물학 등 관련 분야가 자연스레 발달했다. 슈페이제르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몽골 카자흐스탄 중국 등에서 수질을 분석하고 지하수를 개발하는 사업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그는 “서울의 수질을 분석해본 결과 오염도가 상당히 심각했다”며 한국과 수질 관리나 지하수 개발 등의 분야에서 협력할 길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칼호의 수량(水量·2만3000㎦)은 발트해와 비슷한 규모. 앙가라강 등에는 초대형 수력발전소가 즐비하다. TSR의 전철화도 풍부한 전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르쿠츠크에서 동쪽으로 70㎞ 떨어진 리스트뱐카. 바이칼이 앙가라강과 만나는 이 마을은 바이칼을 찾는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 천혜의 관광지로서의 조건을 가졌지만 바이칼은 아직 관광지로 충분히 개발되지 못한 상태. 호텔이나 교통 등 기본 시설도 미비하다. 이르쿠츠크 주정부 관계자는 98년부터 관광산업 육성에 발벗고 나섰으나 여전히 외국인 관광객은 미미하고 그나마 중국 일본 몽골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털어놓았다. 해결책은 대규모의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 것. 알렉세이 소볼 주정부 부지사는 “2001년 서울에서 열리는 관광박람회에 참가해 바이칼을 알리고 외자도 유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시베리아 추위가 닥치면 바이칼도 꽁꽁 얼어붙는다. 겨울에는 높이 4m까지 치솟는 파도가 그대로 얼어붙어 호수면이 울퉁불퉁한 얼음판으로 변한다. 얼음 두께는 150㎝ 정도. 청정호수답게 얼음도 맑아 8∼10m아래까지 볼 수 있다. 안내인은 “겨울에는 얼어붙은 호수위로 철도가 깔리고 호수 위를 다니는 차들을 위해 교통표지판까지 선다”고 설명했다.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망망대해 같은 호수로 나갔다. 배가 일으키는 포말 때문에 수심 40m 밑이 보일 정도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물은 한없이 맑고 깨끗했다. 하늘과 숲 호수 건너편에 깎아지른 절벽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경관은 ‘시베리아의 진주’라는 별명처럼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바이칼호를 위협하는 것은 주변의 펄프공장. 러시아정부는 공장 이전을 추진하고 있으나 예산 부족으로 지연되고 있다. 슈페이제르 교수는 “한국 등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고 지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르쿠츠크〓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바이칼 호수…2500만년 된 담수호▼

세계에서 가장 큰 담수호인 바이칼 호수의 신비로운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바이칼호의 역사는 무려 2500만년. 보통 호수(수명 3만년 정도)의 800배가 넘게 장수하는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호수 내 200m 이하의 깊은 물에서 항상 4도 정도의 수온을 유지하는 점을 들고 있다. 다른 호수들이 수온이 올라가 결국 늪지로 변해버리는 것과는 달리 바이칼은 항상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바이칼이 늘 깨끗한 것은 이와 함께 이 곳에서 사는 ‘보코플라프’라는 1.5㎜ 크기의 새우같이 생긴 갑각류 때문. 보코플라프는 지저분한 것들을 잡아먹는 자연의 청소부 역할을 한다.

바이칼호는 보통 호수와는 달리 200m가 넘는 깊은 곳에서도 사는 생물이 있다. 호수 주변에는 2600여종의 식물과 동물이 사는데 이 중 3분의 2는 이 곳에만 사는 진귀한 것들. 민물에 사는 유일한 물개인 바이칼 물개는 수명이 40∼50년이나 된다. 20∼30년을 사는 장수 물고기 ‘오물’은 관광객들이 즐겨 먹는 별미.

바이칼이 항상 소금기 없는 민물을 유지하는 것도 신기하다. 350여개 하천에서 바이칼로 물이 흘러들어오지만 바이칼호의 염분은 항상 유입 강물들보다 낮다. 학자들은 “호수 바닥에 담수가 끊임없이 나오는 샘이 있는 것 같다”고 추정한다.

<이르쿠츠크〓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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