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기업인 야망과 성공]방음시트제조 고영관사장

  • 입력 2000년 8월 24일 18시 48분


일본 오사카(大坂) 교외 야오(八尾)시의 다카야마카세이(高山化成) 공장은 얼핏 고물상 같았다. 여기저기에 고무 비닐 플라스틱 등 재활용 자재가 수북했다. 이 허름하고 지저분한 회사가 일본 최고의 방음(防音)시트 제조업체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제조업에서 성공하려면 잡화보다는 자동차 건설 전기제품 등 성장산업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본도, 기술도 없다 보니 성장산업에서도 틈새시장을 찾아야 했지요. 고무 비닐 등을 재활용한 소음 차단 제품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재일교포 2세인 고영관(高英寬·57)사장은 대학 졸업 후 제주 출신 부친이 하던 재활용 사업에 뛰어들었다. 25세 때 부친은 그에게 회사 인감을 건네주며 “혼자 해보라”고 권했다.

고사장은 실패를 거듭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자금이었다. 힘없고 신용도 없던 교포기업 가운데는 어음을 발행했다가 패가망신하는 회사가 많았다. 그도 몇 차례 부도를 냈다. 다시는 어음에 손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손쉬운 하청일을 주로 하다 보니 주문이 끊기면 공장 문을 자주 닫아야 했다. 하청업체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굳힌 것도 이때다.

현재 다카야마카세이 오사카 공장에서는 재활용 자재를 분해한 뒤 자동차 방음시트, 건축용 방음바닥재 등 다양한 방음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의 60% 이상, 일본 전체 자동차의 43%가 이 회사 제품을 사용한다. 방음바닥재 시장의 10%, 에어컨 등 전기제품 방음재 시장의 5%를 차지하고 있다.

70년대 초 도요타에 납품한 것이 행운이었다. 당시 방음시트 업체는 얇은 PVC 시트를 여러 겹 붙여 2∼3mm 두께의 제품을 생산했다. 그러나 다카야마에는 접착설비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두꺼운 시트 한 장으로 시제품을 만들어 납품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방음효과는 높아지고 가격은 절반 이하로 낮아졌다. 도요타는 무명 기업에 제품을 맡기는 게 불안했지만 소량이라도 주문해보기로 했다.

도요타가 인정한 업체란 소문이 나자 닛산 마쓰다 등에서 주문이 몰려들었다. 자동차 방음시트는 첫해 100t 생산하던 것이 지금은 1만2000t으로 120배 늘어났다. 10년 전에는 중국 칭타오(靑島)에도 진출했다.

거래업체 사이에서 다카야마카세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납품기한을 지키는 업체’로 통한다. 납품약속을 지키려면 재활용 자재의 안정적인 확보가 중요했다. 고사장은 사업 초기부터 “재료상과 함께 성장한다”는 모토를 내걸었고 현금으로만 거래했다. 비수기라도 물량을 확실히 구입해준다는 보장을 해주는 대신 자재 공급 약속을 절대 지키도록 요구했다. 일단 거래한 업체와는 신용관계를 확실히 했다. 그 결과 현재 거래하는 재료상은 대부분 수십년 ‘사업 동반자’나 마찬가지다.

고사장이 새롭게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주택 바닥재 시장이다.

“지진이 많은 까닭에 일본에서는 지진 충격이나 소음을 흡수하는 건축자재로 아스팔트 바닥재를 사용해왔는데 최근 고급주택에서는 건강에 좋은 PVC시트를 사용하기 시작했지요.”

1년 전부터 일본 주택건설 대기업인 세키스이(積水)주택에 납품을 시작했다.

다카야마카세이는 지난달 겹경사를 맞았다. 낡은 작업라인을 정비해 품질관리인증인 ISO 9002 인증을 받은데다 일본 통산성에서 중소기업 경영혁신 자금 6억엔을 지원받았다. 생산시설 때문에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발을 굴러왔던 고사장은 내년이면 현재보다 5배 넓은 5000평짜리 새 공장으로 이전해 ‘세계 최고’에 도전할 계획이다.

<오사카〓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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