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종전25년]한국-베트남 전쟁피해 후유증

  • 입력 2000년 4월 30일 20시 35분


베트남전쟁은 한국으로서도 잊지 못할 전쟁이다.

한국은 1964년 9월부터 73년 3월까지 31만 7681명이라는 병력을 파견했던 이 전쟁에서 전사 5000여명, 부상 1만5000여명의 큰 희생을 치렀다. 5000여명은 아직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군이 주민 수백명을 학살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전쟁의 ‘악몽’을 되살리고 있다.

한국군의 양민 학살 논란은 지난해 9월 국내 한 주간지에 이어 올 1월 영국 로이터통신이 “한국군이 66년 고자이 마을에서만 380여명을 학살했다”고 전한 것이 계기. 지난달 초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67년 4월 베트남 남부 빈쉬안에서 일가족 4명을 몰살한 것을 비롯해 한국군의 잔혹 행위가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최근 베트남 정부는 과거사 문제를 들추지 않겠다던 종래 입장을 바꿔 참전국들의 책임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최근 ‘토이체’ ‘라오동’ 같은 베트남 신문들도 한국군의 잔혹 행위를 잇따라 보도하면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호치민시에서는 진상규명을 위한 민간단체 결성 움직임도 일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교민들은 “베트남전을 미군과의 전쟁으로 생각하고 있는 베트남인들에게 한국군 양민 학살 기사들이 잇따라 보도되면서 곤혹스럽다”면서 “민간 차원의 상처 치유 노력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의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노이 주재 한국대사관측도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베트남에서 쌓아온 우호적 노력들이 일순간에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하는 표정이다.

물론 과거사 책임 문제는 법적으로 논쟁의 소지가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 전투부대 파병 조건으로 미국과 브라운각서를 체결했고 파병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은 남베트남 정부가 갖고 있었다. 따라서 국제법상 한국군의 행위에 대한 책임은 남베트남 정부에 귀속되며 현재는 남베트남을 흡수 통일한 베트남정부에 돌아간다는 것.

이런 가운데 한국 민간단체의 전쟁 상처 치유 노력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월남전참전전우복지회는 전쟁희생자 추모와 양국 화해를 위해 청룡부대가 주둔했던 지역중 140명의 민간인이 숨진 하미 마을에서 2일 희생자 위령탑 제막식을 갖고 합동 위령제를 열 계획이다.

94년 7월 베트남에 진출한 외교통상부산하 한국 국제협력단(KOICA)은 매년 3400만달러(약 374억원)의 예산을 들여 무상원조와 기술 협력 활동을 펼치고 있다. KOICA는 호치민의 고향인 응헤안성 빈시에 500만 달러를 들여 한-베트남 산업기술학교를 올 9월 완공할 예정이다. KOICA는 또 하노이대 등 전국 5개 대학에 개설된 한국어학과에 10명의 전문가를 파견, 총 500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고 컴퓨터와 태권도 분야 전문가 8명도 파견했다.

민간 기업의 경우 한-베트남 합작 기업인 태광비나, 삼성비나 공장 등은 야간고교를 설립했으며 하노이의 한국 부인회는 수시로 바자를 열어 고아원에 매달 수백달러씩을 전달하고 있다.

[하노이〓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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