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 4대국 21세기 비전]프랑스/주35시간 근무 정착

  • 입력 1999년 12월 31일 19시 05분


《인류의 발전을 주도하는 선진국들은 21세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그들의 목표는 무엇이며 어떤 계획을 세웠을까. 21세기 세계의 판세를 가늠하게 하는 미국 일본 유럽 등 현재의 선진국과 잠재적 선진국 중국의 장기 청사진을 취재했다.》

프랑스에는 요즘 자신감이 넘친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프랑스경제는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고 연말연시 하이퍼마켓과 백화점에는 쇼핑인파가 몰렸다.

파리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프랑스의 변한 모습을 느림보가 유럽 경제성장의 견인차가 됐다는 말로 표현했다.

지난 해 12월 10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EU회원국들이 2003년까지 5만∼6만명 규모의 병력을 분쟁지역에 파견하는 능력을 갖추기로 결정한 것도 프랑스의 자신감을 높인 요인의 하나다.

유럽의 독자방위를 부르짖어 온 프랑스는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그늘 속에 안주하려는 영국을 설득해 신속배치군 구성결정을 이끌어냈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바라보는 프랑스의 21세기는 장밋빛이다. 프랑스국제전망 및 정보연구소(CEPII)의 미셸 푸켕 부소장은 “21세기 초 프랑스의 국가전략은 EU의 테두리내에서 유럽의 독자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우는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은 이미 단일시장과 단일통화를 갖춘 준합중국이지만 통합 정치권력이 없기 때문에 합중국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최고 명문 그랑제콜의 하나인 파리국립정치학교(IEP)의 장 뤽 도메나흐교수는 “양극체제에서는 프랑스가 주장하는 위대한 고립이 통했으나 냉전종식후에는 상황이 바뀌고 있다”며 21세기에는 ‘프랑스적 예외’가 힘을 잃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세계의 파수꾼 역할은 미국에 맡기고 프랑스의 강점인 문화적 힘으로 틈새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프랑스의 전략은 21세기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프랑스의 힘은 외부 문화에 대한 포용력에서 나온다고 강조하면서 21세기에는 문화적 힘이 경제력을 선도하는 문화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21세기 전략을 담당하고 있는 총리실 산하 일반기획청(CGP)이 30여명의 학자들을 동원해 94년 완성한 ‘2000년의 프랑스’보고서도 21세기 프랑스의 과제는 EU내에서 세계의 다른 대집단의 도전에 응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CGP는 99년 시작된 제12차 국가경제개혁 5개년 계획의 주요 목표를 프랑스의 국제적 산업경쟁력 강화로 잡았다. CGP는 이를 위해 △우주항공 전자통신 원자력분야 연구 및 투자 확대 △기업창업 여건 완화 △정보화사회구축 △주35시간 근로제의 확산을 통한 실업률 감축 등을 제시했다.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지난해 8월말 발표한 누벨 알리앙스(새로운 동맹)도 21세기 초 프랑스 국가경영의 목표다. 조스팽 총리는 향후 10년내에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한 중산층―서민층―소외계층의 3자 연합을 주창했다.

누벨 알리앙스의 핵심은 봉급생활자가 대부분인 중산층이 주도적으로 나서 서민층과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보장을 분담하고 사회통합의 비전을 제시하자는 것. 조스팽총리는 중산층에 대한 배려로 2000년부터 중소기업의 법인세와 건물보수에 대한 부가가치세(TVA)를 감면하는 등 2년동안 270억프랑의 세금을 줄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조스팽총리는 지난 해 11월 파리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자 대회에서도 자본주의와 자유시장경제는 일정한 규제가 필요한 비인간적 체제라고 비판하면서 보다 인간적인 사회는 국가가 공공서비스와 완전고용을 보장해줄 때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프랑스는 자유시장 경제를 지향하는 미국은 물론 사회주의 전통과 신자유주의 사상을 가미한 영국과 독일의 ‘제3의 길’과도 다른 프랑스 사회주의 노선을 당분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파리〓김세원특파원〉clair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