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러출범 下]유러화 대책없는 국내기업 많다

  • 입력 1998년 12월 18일 19시 08분


삼성전자 유럽지사들은 전산시스템 개선작업을 마무리하느라 분주하다. 전산시스템에서만도 손볼 곳이 한 두곳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독일 마르크화에서 프랑스 프랑화로 곧바로 환전할 수 있었지만 내년부터는 반드시 유러화를 거쳐 바꿔야 한다.

각국에 흩어진 유럽 물류기지를 통합하고 유럽 각국별로 자금을 운용하던 것을 범유럽 차원에서 통합해 재무관리를 하기 위해 준비작업이 한창이다.

삼성전자 유러화 태스크포스팀 박성수(朴聖秀)부장은 “유러화 출범은 기회이자 동시에 리스크”라며 “금융과 해외업무를 통합하는 계기가 되겠지만 수출상품의 시장가격이 떨어지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유럽 현지거래는 내년부터 가급적 유러화로 결제해 매년 금융비용 3백만달러와 물류비용 20%를 감축할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현대그룹은 유럽지역 우량 금융기관과 전략적 제휴를 맺어 각국에 흩어져 있는 계좌를 하나로 통합 관리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비용과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럽시장을 단일시장으로 보고 현재 국가별로 차이가 나는 현대그룹 제품의 가격을 거의 동일하게 유지해 나갈 계획이다.

LG도 세계적 컨설팅업체인 미국의 KPMG사에 용역을 맡겨 유러화의 영향 분석과 대책 마련에 나섰다.

신한은행은 내년 1월부터 당장 유러화에 의한 수출입 결제가 가능하도록 유러화 환가요율을 책정할 계획이다. 외환은행은 유럽을 찾는 관광객이나 기업인들을 위해 유러화 여행자수표도 발행한다.

대부분 은행들은 유러화 출범에 대비한 전산시스템 구축작업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국내 기업들이 내년 1월부터 유러화 계좌를 개설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5대 그룹과 주요은행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내 기업들은 유러화 대응에 소홀하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5일까지 3백4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1.3%가 유러화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응답했으며 71.4%가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러화 대책은 실무적인 측면과 전략적인 측면이 있다. 한국 기업은 아직까지 △유러계좌 개설 △거래양식과 전산시스템 변경 △이중가격 표시제 채택 등 실무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득갑(金得甲)수석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시장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제품가격이 유러화로 통일되면 각국의 가격차이가 쉽게 드러나므로 가격인하 압력과 심각한 경쟁에 직면하게 된다”고 전망했다.

이 때문에 유럽 현지기업이나 세계 굴지의 기업체들은 가격 정책을 어떻게 취할 것이냐를 놓고 더욱 고심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종화(李鍾華)책임연구원은 “유러화 출범으로 당장 국내기업에 큰 영향이 없더라도 93년 유럽연합(EU)이 출범되면서 한국의 대EU 적자가 늘어난 것처럼 한국 수출업체들의 경쟁력 약화가 서서히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자원부 김종갑(金鍾甲)국제산업협력심의관은 “화학 철강 자동차 등 EU기업과 경쟁관계에 있는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원가 절감과 기술개발을 통한 수출가격 및 품질 경쟁력 증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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