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換亂1년 ①]사라지는「경제거품」…제2충격 가능성

  • 입력 1998년 6월 29일 19시 53분


97년 7월2일. “투기자금의 공격으로 태국 바트화의 가치가 달러당 30바트 수준까지 폭락했다”는 짧은 기사가 ‘긴급(Urgent)’ 문패를 달고 방콕에서 세계 곳곳으로 타전됐다.

아시아경제를 쓰러뜨리고 세계경제에 큰 충격을 준 아시아 환란(換亂)은 이렇게 막이 올랐다.

▼발단〓바트화의 환율이 97년 4월9일 달러당 24바트대에서 26바트로 올랐을 때만 해도 태국 밖에서는 대체로 무관심했다. 7년7개월만의 바트화 가치하락에 이어 6월19일 27바트대가 무너지자 태국 재무장관이 사임했다.

97년7월2일. “고정환율제를 고수하지 않겠다”는 태국중앙은행의 발표와 함께 바트화 매각태풍이 불어 이날 하루 바트화 가치는 18%가 떨어진 달러당 30바트 수준으로 폭락했다. 97년 초부터 시작된 핫머니의 공세앞에 동남아시아가 무릎을 꿇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위기의 확산〓바트화가 무너지자 보름 안에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주변국이 변동환율제로 전환했다. 환율이 흔들리자 이 지역에 투자돼 있던 달러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환율은 더 올랐다.

10월28일 위기는 홍콩증시로 번졌고 11월에는 한국의 원화까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펀더멘털(경제의 기본요소)이 튼튼하다’던 한국과 홍콩도 예외가 아니었다.

금융경색은 실물경기의 위축을 불러왔다. 마이너스 성장과 기업부도가 줄을 이었다. 실업자가 쏟아져 나왔고 개인파산에 따른 자살도 속출했다.

자산디플레이션도 심각해 주식은 절반이하 가격으로 떨어졌고 부동산 가격도 30∼40%씩 하락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의 경우 위기이전에 비해 가치가 무려 84%나 떨어졌다.

▼원인〓전문가들은 아시아 환란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아시아 경제를 덮고 있던 ‘거품’을 꼽는다.

태국의 경우 95년말 외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했다. 이 돈은 대부분 부동산건설과 주식에 투자됐으나 제조업 경쟁력이 무너져 무역적자가 누적되고 성장은 정체됐다. 실력은 약한데 경제는 부풀려져 있었다.

더욱이 이 지역 국가들은 정부주도 성장전략을 택해 금융산업의 시장원리가 무시됐고 정경유착 불투명성 뇌물관행 등이 경제의 효율성을 해쳤다.

국제적 헤지펀드들은 환란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환투기를 했다.

▼전망〓외환위기 이후 아시아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경험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56개 금융기관이 작년 11월 문을 닫았으며 일본 한국 홍콩 인도네시아에서도 금융기관이 줄줄이 쓰러지고 있다.

정치적 파급효과도 컸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정권의 붕괴, 태국 용차이윳 총리의 퇴진 등은 경제위기와 관련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위기의 1년을 지나고도 수습의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기만 하다. 인도네시아사태와 엔화가치 폭락은 제2의 환란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멕시코 브라질 등 과거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들은 적어도 3,4년씩 충격의 늪을 허우적거렸다. 아시아 환란의 극복에는 그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리리라는 전망이다.

〈허승호기자〉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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