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고바야시 교수 강연요지]韓日 새시대의 우호조건

  • 입력 1998년 3월 28일 19시 50분


《서울 YMCA는 27일 일본 게이오대 고바야시 세쓰(小林節·변호사)교수를 초청, 특별강연회를 가졌다. ‘21세기 한일 새 시대의 진정한 우호조건’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에서 고바야시교수는 “과거 일제가 아닌 새롭게 변화하는 일본의 모습을 직시해 달라”면서 새로운 우호관계를 만들기 위한 양국 젊은 세대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강연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전후세대 일본인으로 태어난 내가 아시아 이웃나라들을 침략한 ‘죄의 나라’ ‘죄의 민족’의 일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무척 당황했다. 법학 상식에 비추어보면 자신이 하지 않은 일, 즉 조상이 저지른 일까지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일본이 패전 전 아시아에 저지른 것이 ‘침략’이었다는 것과 ‘악’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최근 일본내에는 과거 일본이 이웃나라들에 오히려 좋은 일을 했다는 바보스러운 주장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같은 일본인으로서 창피하게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형제처럼 닮은 민족이다. 지리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이웃이지만 서로 전혀 다른 민족성을 갖고 있다.

먼저 일본인은 말과 본심이 다른 민족이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의 눈에는 거짓말쟁이처럼 보인다. 일본인들은 속으로는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도 말로는 간단히 사죄를 한다. 모든 일을 논리적으로 생각하기보다 그때그때 상대방의 감정에 상처 입히는 것을 피하고 싶어하는 민족성 때문이다.

이점을 개선하지 않는 한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철이 든 사람의 대우를 받는 국가, 민족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일본과 사귈 때는 일본측 입장을 명확히 기록해서 그 실행을 계속 촉구하는 것이 일본 민족의 교육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한국인들은 상대방과 논쟁이 일어났을 경우 끝까지 100%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 같다. 때로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의 강한 주장에 밀려 사실은 납득하지 않으면서 ‘예’라고 말했다가 그후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다지 본질적이지 않은 문제라면 조금씩 양보하는 노력을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한국인들에 대한 바람이다.

그점에서 재일 한국인들이야말로 양국 우호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일본인의 무책임에 대해 동정과 공감을 가질수 있으며 동시에 한국인의 고집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다. 또 재일 한국인 중에서 높은 교육수준과 기능을 가진 영재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 양국의 진정한 교감에 희망을 주고 있다.

21세기 양국 우호관계를 구축하는 데 한국인들이 또 한가지 알아야 할 일이 있다. 즉 일제때와는 다른 전후세대 일본인이 벌써 인구의 과반수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일본제국의 아시아침략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변명할 필요없이 자국의 죄를 솔직하게 직시할 수 있다. 다만 자신의 책임이 아닌 것을 계속 추궁당하면 반발할 사람들이지만 양국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욕이 넘치는 세대이다.

전후세대는 또 전쟁세대처럼 다른 나라를 부당하게 무시하거나 거꾸로 패전의 충격 때문에 부당하게 비굴한 태도를 갖지 않고 대등하게 다른 나라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아시아를 다시 침략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다.

그러므로 한국인들도 지금까지 과거를 비판하기 위해 소비했던 에너지를 21세기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미국과 함께 3국이 협조해 나가는 방법을 논의하려는 노력으로 바꾸어주기 바란다. 옛날의 일제가 아닌 새로운 일본의 모습을 직시해서 아시아와 세계를 이끌어갈 동지가 되자.

고바야시 세쓰<일 게이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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