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레그린증권 한국계 풍운아 안드레 리,印尼서 비운

  • 입력 1998년 2월 24일 19시 51분


페레그린(Peregrine)은 ‘송골매’다. 홍콩계 자본으로는 최대 증권회사였던 페레그린의 파산은 하늘 높이 비상하던 송골매의 추락을 연상케 했다. 미화 4억달러의 부채와 부실채권으로 경영이 악화한데다 인도네시아 택시회사 스테디 세이프에 투자한 2억6천5백만달러가 큰 짐이 됐다. 루피아화 가치의 붕괴가 회사의 발목을 잡은 것. 지난달 회사가 파산하자 안드레 리가 이끈 채권팀의 책임론이 일었다. 그의 항변은 어떨까. “‘채권팀 책임론’은 당치않은 얘기입니다. 최근 몇년간 페레그린을 수익률 높은 회사로 키운 게 채권팀이었고 고전은 했지만 채권팀은 97년에도 흑자를 냈습니다.” 당시에 나온 ‘채권팀 책임론’의 핵심은 왜 스테디 세이프의 2억6천5백만달러 채권발행을 확실한 인수예정자 없이 떠안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는 것. 채권이 발행된 후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의 폭락 가능성이 제기되자 채권인수를 약속했던 회사들이 약속을 파기, 인수를 하지 않는 바람에 일이 잘못됐다. “미국계 거대은행들은 동남아에서 페레그린보다 훨씬 큰 손실을 봤는데도 덩치가 커서 견뎌냈습니다. 페레그린은 엄격한 홍콩의 은행제도 때문에 대출이 끊겨 흑자도산한 것입니다. 더욱이 스테디 세이프는 단순한 택시회사가 아니라 버스 철도운영은 물론 해상운송을 하는 전망 좋은 종합운수회사였지요.” 스테디 세이프는 90년대 초 홍콩은행이 1억달러를 투자하고 수하르토대통령의 장녀인 투투가 지분참여(11%)를 하면서 급성장한 회사. 97년 2.4분기때만 해도 SBC워버그(스위스) 노무라(일본) 등 거대투자은행들이 거래를 따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안드레 리는 같은 동남아라도 국가와 시기에 따라 투자여건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설명했다. “투자자들에게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완전히 다른 나라였습니다. 태국은 한때 페레그린 채권팀 거래의 40%를 집중한 최대 고객이었지만 동남아위기 1년전인 96년7월에 이미 철수결정을 내렸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페레그린은 당시까지만 해도 여전히 ‘떠오르는 신흥시장’으로 평가되던 태국의 금융시장 붕괴를 내다봤다는 얘기다. “태국은 96년 들어 거품이 빠지면서 부동산가격이 폭락했습니다. 담보가치가 하락하자 은행과 금융회사에 악성부채가 누적됐고 금융 및 부동산 관련주식의 폭락이 줄을 이었지요.” 외국인 직접투자와 수출이 눈에 띄게 줄고 채권이자율도 떨어져 수익률이 바닥을 치기 시작하자 그는 과감히 태국에서 돈을 뺐다. 그의 신속과감한 결정은 회사는 물론 동료들을 놀라게 했다. “아직 태국시장은 별문제 없는데 굳이 빠져나올 필요가 있느냐며 반대하더군요. 필립 토즈회장에게 설명하고 나서 재가를 받았죠. 결국 엄청난 손해를 막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96년 여름 태국을 거래부적격 상태로 판단하면서 97년의 인도네시아 상황을 낙관한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97년3월의 인도네시아 상황은 1년전 태국과 달랐습니다. 외국인 직접투자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수출 물가 이자율 성장률 등 경제의 기본(펀더멘털)이 건실했어요. 적어도 98년 2.4분기까지는 안전하리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인도네시아가 왜 이지경까지 몰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잘되면 영웅이고 잘못되면 역적’인 것은 투자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페레그린 파산과 관련한 비난은 결과론입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직전, 타임지는 페레그린을 앞으로 홍콩을 이끌 주요회사의 하나로 높이 평가했습니다.” <김승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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