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日에도 「마당발인맥」…政-학계등과 폭넓은 교류

  • 입력 1997년 12월 20일 20시 03분


나카소네
김대중(金大中)후보의 한국 15대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직후 일본에서 나온 첫 반응의 하나는 『그가 지일(知日)파로 한일관계 개선에 지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김당선자의 「지일」 인연은 그의 반독재 투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는 반유신 해외투쟁 거점을 구축하기 위해 72년부터 일본에서 활동했다. 또 일본 사회당 등과의 야당 외교를 통해 친분관계를 맺은 정치인이 적지 않으며 학계 법조계 등과도 폭넓은 교류를 유지해왔다. 이같은 교분의 배경에는 73년 세계를 놀라게 했던 「김대중 납치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김당선자는 납치사건의 진상규명에 앞장서 일본정부를 몰아붙였던 당시 아시아 아프리카(AA)연구회 멤버 덴 히데오(田英夫)참의원, 우쓰노미야 도쿠마(宇都宮德馬)전 중참의원 등과 절친하다. 납치사건 일본측 진상규명위원장을 지낸 덴의원은 『72년 처음 만났는데 김당선자가 민주화의 필요성을 감동적으로 역설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고했다. 김당선자는 또 사민당 도이 다카코(土井たか子)당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전부총리 등과도 속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며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총리와도 가까운 사이다. 그러나 김당선자의 지인들은 대부분 원로들이다. 따라서 현재 일본정부나 정계에 대한 영향력은 제한적이어서 한일간 「파이프」역할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김당선자는 최근 월간지 분게이순주(文藝春秋)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유력한 지도자들은 직접 만나는 게 중요하다』며 『서로 생각이 달라도 대화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특히 김당선자의 일본 인맥에는 보수 본류나 집권 여당쪽이 상대적으로 약해 앞으로 일본통인 박태준(朴泰俊)자민련총재를 앞세워 「일본 공략」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박총재는 다케시타를 비롯해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전총리, 모리 요시로(森喜朗)자민당총무회장, 세지마 류조(瀨島龍三)이토추상사고문 등 일본 정재계의 거물들과 막역한 사이지만 그 역시 50, 60대의 「상대적 신세대」와는 교분이 적은 편이다. 김당선자와 가까운 학계 법조계 인물로는 와다 하루키(和田春樹)도쿄대교수, 이토 나리히코(伊藤成彦)주오대교수, 야스에 료스케(安江良介)이와나미서점사장, 사사키 히데노리(佐佐木秀典·중의원)변호사 등이 꼽힌다. 김당선자의 일본 인맥은 주로 그가 야당지도자이자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지도적 인물로 활약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도쿄〓윤상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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