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가 본 홍콩귀속]「동양의 생명」 새로 움튼다

  • 입력 1997년 7월 1일 20시 11분


「제국주의 시대에 억눌렸던 동양의 생명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서세동점(西勢東漸) 역사의 기운이 종식되고 새로운 정신문명의 기(氣)가 아시아에 움트고 있다」. 생명사상가인 金芝河(김지하·56)시인이 지난달 30일 밤12시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돌아가는 순간 구룡반도에서 홍콩섬을 바라보면서 생각하는역 사읽기다. 그가 동행하는 기자에게 전해준 역사 읽기는 다음과 같다. 『50년을 넘게 살아온 내가 생애 첫 해외 나들이로 홍콩을 택한 것은 홍콩회귀가 이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날 행사는 단순히 홍콩이라는 작은 땅이 중국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서양의 물질주의와 합리주의에 빼앗겼던 동양의 정신과 생명이 회귀해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하는 현장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을 반환(返還)으로 보는 것은 서양인들의 시각이며 왜곡되고 굴절됐던 역사의 되돌림으로 여긴다. 그러나 새로 움트는 생명의 기운은 서양에 대항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 홍콩에서 동양과 서양은 대립이 아닌 조화속에 21세기 새로운 문명의 좌표를 탐색하는 패러다임을 구하고자 했다. 미처 자라지 않고 씨앗으로 남아있던 생명이 눈을 틔우는 서막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30일 오후 카이탁 공항에 도착한후 처음으로 찾은 곳은 이날 밤 인민해방군이 홍콩으로 진주한 신계 북쪽 낙마주(落馬州). 막혔던 길이 뚫리는 것을 상징하는 이곳에서 동양의 막혔던 기의 통로가 뚫리는 현장을 보고 싶었다. 1일 오전에는 구룡반도의 대표적인 빈민가인 상해가(上海街)를 찾았다. 최첨단의 자본주의를 자랑하는 홍콩의 뒷모습이다. 앞으로 홍콩의 장래에 대한 전망은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는 첨사저(尖沙咀)와 홍콩섬의 고층빌딩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서양의 물질문명과 동양 생명의 사상이 결합된 21세기의 새로운 정신은 상해가에서 보이는 절대빈곤층의 해결이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과제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홍콩에서 우리나라의 지난 과거도 생각했다. 동학혁명 당시 시작된 개벽사상이 이제 움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홍콩을 시작으로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현장을 탐색하는 「김지하 루트」 찾기 여정에 나섰다고 했다. 움트는 생명의 눈을 활짝 피우기 위해 꼭지를 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의 시야는 홍콩섬이나 동양이 아니라 전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지하시인은 동양의 한 귀퉁이 홍콩에서 새로운 정신문명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었다. 〈홍콩〓구자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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