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 사망/전문가가 본 중국의 미래]

  • 입력 1997년 2월 20일 20시 01분


毛澤東(모택동)이 카리스마적 권위를 바탕으로 한 혁명가라면 鄧小平(등소평)은 공산당의 조직적인 권력에 기반한 유능한 행정가였다. 물론 등소평도 경험과 명망에서 비롯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난 등은 일찌감치 은퇴하는 등 가능한한 카리스마적 권위를 피하려 노력했다. 이것이 바로 등이 모에게서 얻은 최대의 교훈중 하나였다. 80년대를 통해 그는 경제개혁에만 전념했다. 각 농가와 기업에 경영의 자주권을 부여, 대외개방으로 외국자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전제로서 「공산당의 지도」는 일관되게 강조했다. 유연한 경제에 강경한 정치의 원칙이었다. 「경제발전이란 공(功)을 달성했을때 과(過)로서의 강경한 정치는 정당화돼 집권정당으로서의 공산당의 지배는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등소평의 발상이었다. 등의 뇌리에는 한국이나 대만 및 싱가포르 등 신흥공업국의 궤적이 발전모델로 그려져 있었다. 현재 중국의 경제성장은 눈부시며 공산당의 지도도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중국은 등이 바랐던 궤도에 올라선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해 그렇다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우선 공산당의 지도력에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등이 추진해온 경제개혁 자체에 있다. 경제개혁에 의해 경영의 권한은 중앙에서 지방이나 하급단위로 이양됐으며 현장의 재량권은 전례없이 확대됐다. 또 대외개방정책은 서방국가들로부터 선진적인 과학기술뿐 아니라 막대한 물자와 돈, 그 배후에 있는 문화와 가치관을 중국에 유입시켰다. 이같이 중국사회와 그를 지탱하는 개개의 가치관이 다양화 다원화됨으로써 공산당의 일원적인 지도에 의한 국가권력은 약화됐다. 공산당권력의 약체화는 중앙과 지방간의 관계 속에서도 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제공(諸公)경제」라고 불려온 지방의 경제할거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다 공산당 하부조직의 사기도 매우 이완되고 있다. 시장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공산당 지도를 강조한 결과 간부의 독직과 관료주의가 만연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은 여전히 중국 최강의 조직으로 군림하고 있다. 공산당이 아직도 강력한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군과 공안이라는 폭력장치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등이라는 거목이 사라진 중국정치의 초점은 금후에도 계속 당이 군을 장악, 문민통제를 계속할 수 있을 지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고쿠분 료세이<게이오대 교수> [약력] 44세. 76년 게이오대 법학부 정치학과 졸. 81년 동대학 박사과정 수료후 법학부 전임강사. 현재 동대학 교수, 미하버드대 및 미시간대, 중국 복단(復旦)대 객원연구원 역임. 「중국정치와 민주화」 「아시아의 국제질서」 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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