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세계를 움직인 사람들/갈리]

  • 입력 1996년 12월 26일 20시 24분


「李奇雨기자」 올 하반기동안 부트로스 갈리 전(前)유엔사무총장의 연임여부를 둘러싸고 빚어진 국제사회의 「파워게임」은 그가 그동안 주력해온 「유엔 홀로서기」의 업적과 성과를 대변해주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의 연임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횡포」에 맞선 프랑스 러시아 중국등 안보리상임이사국들의 거센 반발과 아프리카 아랍권의 굳은 결속은 그에 대한 국제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다시한번 확인해주었다. 이때문에 일부에서는 미국은 그의 연임을 막는데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부트로스 갈리 이후의 유엔」은 안보리의 최대주주를 자처해온 미국의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부트로스 갈리는 지난92년 1월 유엔 사무총장 취임이래 유엔의 위상 제고및 독립성 확보를 임기중 최대 숙원사업으로 추진해 왔다. 그는 먼저 냉전종식후 강대국의 전횡으로 인한 지구촌의 혼란을 막고 국제법에 의한 세계평화와 질서유지를 위해 유엔의 안전판 역할을 강화해왔다.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말리아 보스니아 등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주도했다. 특히 그는 지난93년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판문점을 거쳐 북한을 방문하는 등 세계 50여개국을 돌아다니며 분쟁해결에 힘을 쏟았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구소련 해체로 힘의 공백이 생기면서 곳곳에서 분쟁이 빈발,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유엔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국제적 합의 위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는 또 리우 환경정상회담, 카이로 인구회의, 코펜하겐 사회개발 정상회의, 북경 세계여성회의 등을 잇따라 개최, 군사 안보기구로 인식돼온 유엔의 역할과 위상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를 눈엣가시로 여겨온 미국은 그를 「유엔 개혁의 걸림돌」이라고 비난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유엔 사무총장의 충성심은 국제적이어야 하며 어느 한 국가나 그룹의 비위를 맞추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그의 유엔총회 고별연설 내용에 공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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