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권 “어른으로서 좋은 음악을 전하고 싶다”

스포츠동아 입력 2015-10-13 07:05수정 2015-10-13 07:05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전인권은 매일 아침 4시에 눈을 떠 노래연습을 하고, 기타를 치고, 작곡을 한다. 그렇게 완성한 노래가 100곡에 달한다. 스포츠동아DB
■ 싱글 ‘너와 나’로 음악활동 재개

“세월호사고 위안 주려고 만든 노래
최근 몇년간 써둔 곡이 100곡 넘어
요즘 나는 음악에 완전히 미쳐있다”


가수 전인권(61)은 고교 2학년 때 자퇴를 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왜 공부를 해야 되는지” 알 수 없었고, “공부를 안 한다는 이유로 매를 맞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학교제도가 싫어” 17세에 학교를 떠났다. 그 이후 “모든 제도에서 탈피”했다. “재미없는 제도, 어울릴 수 없는 제도”에서 벗어났다.

17살이 끝나가던 때엔 히피 문화에 빠졌다.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체제 자연찬미파의 사람들을 말하는 히피(hippie)는 기성의 사회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 자연에의 귀의 등을 강조하며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면서 평화주의를 주장했다. ‘제도’가 싫었던 전인권에겐 더 없이 어울리는 문화였다. 전인권이 대마초를 하게 된 것도 기성사회에 대한 반감이었다. “그때는 당시의 사회와 거래하느니 마약과 거래하겠다는 ‘똥배짱’이었다”는 전인권은 “그 배짱이 들국화의 성공으로 이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그땐 모든 게 싫었다”고 했다.

관련기사
25살 전인권에게 전축이 생겼다. LP를 사기 시작했고, 어느새 3000장을 모았다. 그 3000장에 실린 노래의 “제목만 말해도 한 소절씩 부를 수 있을 만큼” 수없이 반복해 들었다. 그가 악보나 가사를 전혀 보지 않고, 노래를 모두 듣고 외워서 공연하는 습관은 이때 생겼다.

1985∼1986년, 들국화 1, 2집이 당시 사회에 거센 폭풍을 만들었지만 방송출연을 전혀 하지 않았다. 전인권의 고집 때문이었다. 방송 없이도 엄청났던 신드롬을 두고 그는 “들국화 현상”이라고 했다. 흐뭇한 표정으로 과거의 찬란했던 때를 돌이킨 전인권은 “공연장에 못 들어온 사람들이 철문을 부순 일이 한 일간지에 ‘들국화 사태’라는 제목의 사건기사로 나오기도 했다”고 했다.

“군부시대에 우리(들국화)가 탈출구였던 거지. 근데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하니까 막상 겁도 나더라고. 그땐 난 마약도 많이 하고, 도망 다니고 했었는데….”

마약류 투약으로 1년의 수감생활을 하고 2008년 출소했던 전인권은 피폐한 일생 속에서 문득 자신이 ‘폐인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새로운 인생을 결심했다. 그리고 2011년 딸의 결혼식을 치르면서 마약류에 대한 유혹에서 ‘완전한 탈출’에 성공했다고 한다.

“딸의 손을 잡고 신부입장 하는데, 사람들이 나를 ‘마약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았다. 딸에게 참 미안했다. 그때 약속했다. 부끄러운 아빠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겠다고.”

전인권은 가족과 의료진의 도움으로 마약류를 끊었다. 요양원에서도 1년여 지냈고, 정신과 치료도 1년 넘게 받았다. 이젠 마약을 농담의 소재로 삼는 그의 표정에서 여유마저 묻어났다.

“한 40년간 (마약류를)그렇게 했다. 내가 마약으로는 세계 1위였을 거다. 담배 끊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나한테 못 당한다. 나는 마약을 끊었다.”

대상포진과 신경통에 시달리기도 했던 전인권은 “아직 나는 정상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내년쯤이면 완전히 정상이 된다”면서도 “음악 감성은 이미 온전히 돌아온지 오래”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요즘 내가 음악에 완전히 미쳐있다”고도 했다.

전인권은 매일아침 4시에 일어나 노래연습을 시작한다. 기타를 치고 작곡을 한다. 몇 년간 그렇게 써둔 곡이 100곡에 이른다. 다른 가수를 위해 따로 써둔 곡도 있다.

최근 발표한 싱글 ‘너와 나’는 그 중 한 곡이다. 작년 여름 경북 포항 칠포의 비 오는 밤바다를 지켜보다 세월호 사고를 떠올렸고 “여럿이 같이 뭉쳐서 위안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노래를 만들게 됐다. 그리고 다짐을 했다. 음악계 어른의 역할을 다 하기로. 그가 “미친” 이유다.

“나이도 있고, 어른으로서 ‘좋은 음악’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 음악의 뿌리, 리듬의 뿌리. 그런 것들을 내가 공부하고, 그렇게 내가 얻은 것들을 후배에게도 대중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기차를 타고 가다 좋은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보면 풍경이 달라 보인다. 위대한 음악은 그런 것이다.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음악의 흐름을 바꿔놓고 싶다. 난 65세 정도까지만 음악을 할 생각이다. 몇 년 남지 않았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