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빵 터지는 ‘스무살 보고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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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 잡고 밝히는 것만이 청춘의 다는 아니야”… 25일 개봉 ‘스물’

영화 ‘스물’(왼쪽 사진)의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세 남배우가 어우러진 궁합이다. 김우빈과 강하늘, 이준호는 진짜 어릴 적부터 친구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긴다. ‘스물’은 과거 청춘영화 ‘비트’ ‘청춘’ ‘족구왕’(오른쪽 사진 위부터)의 장점을 감칠맛 나게 섞어 놓은 것 같다. NEW 제공
영화 ‘스물’(왼쪽 사진)의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세 남배우가 어우러진 궁합이다. 김우빈과 강하늘, 이준호는 진짜 어릴 적부터 친구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긴다. ‘스물’은 과거 청춘영화 ‘비트’ ‘청춘’ ‘족구왕’(오른쪽 사진 위부터)의 장점을 감칠맛 나게 섞어 놓은 것 같다. NEW 제공
‘스물’(25일 개봉)은 청춘영화다.

풋풋한 봄(靑春)을 다룬 영화야 지겹도록 많다. ‘맨발의 청춘’(1964년) ‘별들의 고향’(1974년)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1987년)…. 그런데도 요 녀석 정이 간다. 어디서 본 듯하나 구닥다린 아니다. 온갖 장르가 뒤섞였는데 산뜻하다. 뭣보다 재밌다.

게다가 이 영화는 “지들끼리 놀지 않아” 좋다. 억지 복고를 끌어다 쓰지도, 요즘 인터넷 외계어로 장벽을 치지도 않는다. 중장년도 빵 터질 에너지가 넘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쌈빡한 작품이 나올 터전을 마련해준 ‘선배’ 청춘영화들과 비교해 봤다. 해마다 봄꽃은 피고 또 지니까. 우리 모두의 뜰에서.

○ 1990년대 ‘비트’=청춘의 간지


제임스 딘과 저우룬파(周潤發), 신성일과 최재성…. 누구나 그랬다. 젊음의 권리인 양. 최소한 고개라도 삐딱하게. 남정네는 따라했고 여인네는 울먹였다. 1997년 ‘비트’의 정우성은 그 정점을 찍었다.

청춘영화에서 ‘간지’(느낌이란 뜻의 일본어)는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그냥 ‘척’했다. 일단 이름부터 민이야. 오토바이 따윈 두 손 놓고 타줘야지. 헬멧 미착용인데 경찰이 잡지도 않아. 근데 젠장, 멋있어. 심지어 여자친구는 로미(고소영).

‘스물’은 이런 공식을 비껴간다. 아예 내다버린 건 아니다. 그럼 김우빈(치호 역) 강하늘(경재 역) 이준호(동우 역)를 안 썼겠지. 뻔한 셔츠 하나만 걸쳐도 근사한 놈들. 헌데 멀쩡한 배우들이 꼴값 떠니까 괜히 흐뭇하다. 하긴 어디서 강하늘이 자위행위하다 여동생(이유비)한테 걸리는 구경을 하겠나.

어쩌면 시대가 간지 개념을 바꿔놨을지도. 치호 같은 허우대도 잉여인간이 되고, 가난하면 동우처럼 여친마저 접는 ‘5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에 주택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는 세대)가 뭔 폼을 잡겠나. 이런 시절엔 까불 수 있는 여유 자체가 최고의 간지다.

○ 2000년대 ‘청춘’=청춘의 성욕

제목이 ‘청춘’인데 청소년 관람불가였다. 21세기 청춘영화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정우성은 폭력배와 맞짱 떠도 사랑과 의리 앞에선 어린애였다. ‘청춘’의 자효(김래원) 수인(김정현) 남옥(배두나)은…. 성기발랄. 까져도 너무 까졌다.

영화 ‘청춘’은 솔직했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탐닉은 자연스러운 거다. 이전까지 젊음을 순정만화처럼 꾸미던 포장지를 확 찢어발겼다. 성애 또한 성장의 단계임을. 그 끝에 뭐가 기다리건.

‘스물’은 그 욕정을 마주보되 어둠은 사양한다. 당연한 거니 신명나게 밝힌다. ‘아메리칸 파이’의 한국 버전이랄까. “내 ××를 네 엉덩이에 비비고 싶어.”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이렇게 발칙한 유혹이 있었던가. 치호가 구상한 시나리오 제목은 ‘꼬추 행성의 침공’이다.

이렇게 야리꾸리한데. 놀랍게도 ‘스물’은 15세 이상 관람가다. 되짚어보니 노출은 없다. 끈적한 청춘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만나시길. 다만 얘들이 더 짜릿하다.

○ 2010년대 ‘족구왕’=청춘의 병맛


언제부턴가 청춘은 독립영화의 텃밭이 됐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더니 앓는 젊음을 숱하게 입원시켰다. ‘한공주’(2014년) 같은 걸작도 그런 흐름에서 나왔다.

지난해 저예산영화 ‘족구왕’은 이를 뒤틀었다. B급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웠다. 제대한 복학생이 족구하는 얘기. 여성이라면 치를 떨 소재를 병맛(병신 같은 맛) 나게 풀어냈다. 대학생이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게 당연해져버린 시대를 ‘족구왕’은 낄낄거린다. 청춘은 정색하지 않아도 세상을 비추니까.

상업영화 ‘스물’은 ‘족구왕’의 부잣집 사촌이다. 경재는 꿈이 대기업 입사고, 치호는 꿈을 찾는 게 꿈이다. 동우는 끝없는 알바에 시달린다. 어쩌다가…, 누군 혀를 차겠지. 허나 스무 살은 웃어도 된다. “남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 그러다 보면 또 길을 찾을지니. 참고로 ‘족구왕’에서 이 말을 한 주인공 안재홍(만섭 역)은 ‘스물’에서 경재 대학동기로 나온다. 둘은 캠퍼스에서 족구 한 판 할라나. 벚꽃 흐드러지면 막걸리 한 사발 걸고.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스물#청춘영화#비트#청춘#족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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