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에서 배급까지 ‘큰손’이 좌우… 다양성 영화 보호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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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시장 2조원 시대]<上>영화산업 ‘빈익빈 부익부’
영화인 33명 설문조사

《 한국 영화 시장 2조 원 시대가 열렸다. 지난해 영화계는 2가지 큰 경사를 맞았다. ‘명량’은 관객 1761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흥행 1위에 올랐고 ‘변호인’과 외화 ‘겨울왕국’ ‘인터스텔라’까지 4편의 ‘1000만 영화’가 한 해에 탄생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영화산업 매출은 사상 최초로 2조 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말 개봉한 ‘국제시장’ 역시 올해 초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외양만 보자면 한국 영화계란 꽃이 만개한 듯하다. 하지만 본보가 영화계 주요 인사 33명에게 설문 및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내부 체감온도는 강추위를 맞고 있었다. 2조 원 시대를 맞은 한국 영화계의 현안을 3회에 걸쳐 진단했다. 》

영화계 최고 권력은 과연 누구일까?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 또는 개인은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83.3%(25명·무응답 3명 제외)가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를 꼽았다. 2위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2명)와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 1위다.

○ 충무로 절대 권력 CJ

응답자 일부는 CJ엔터테인먼트를 “절대 권력”이라고 표현했다. 한 제작사 대표 A 씨는 “CJ는 영화 제작부터 투자와 배급, 심지어 부가판권 시장까지도 휩쓸고 있다”며 “영화계 전체의 ‘만인지상(萬人之上)’”이라고 말했다.

업계 1위인 CJ엔터테인먼트의 지난해 관객점유율은 24.9%. 산술적으로 영화 관객 네 명 가운데 한 명은 CJ가 배급한 영화를 본 셈이다. 같은 대기업 투자 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12.1%)의 2배가 넘는다. 한국 영화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큰손’인 CJ는 계열사인 CJ CGV가 극장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전체 멀티플렉스 295관 가운데 126관(42.7%)을 갖고 있으며, 비멀티플렉스를 포함한 전체 극장 스크린(2281개)의 41.5%(948개)를 차지하고 있다.

편장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은 “CJ를 비롯한 대기업이 전체 시장 규모를 확대하고 산업을 체계화시킨 건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이윤 추구의 잣대로 영화계가 균형성을 잃고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가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영화계 현안에 대한 질문(복수 응답)에 ‘대기업의 수직계열화와 시장 독점’을 꼽은 응답자가 압도적(84.4%)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영화사 대표 B 씨는 “대기업의 편파적인 상영관 운영 탓에 중소 배급사 영화는 예고편 상영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구조는 영화 산업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최근 낸 ‘2014년 한국 영화 산업 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투자 수익률은 0.3%로 추정된다. 2012년부터 3년 연속 플러스 수익이 나긴 했지만 2013년 14.1%와 비교하면 큰 폭으로 떨어졌다. 대기업이 기획 제작한 대형 영화들은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중소 제작사들이 제작한 영화들의 흥행이 저조했기 때문에 전체적 수익률이 낮아졌다. 영화계에서 흔히 ‘중박’이라 부르는 관객 500만∼800만 명의 한국 영화는 지난해 단 1편도 없었다.

○ 중장년층 위한 텐트 폴(tent pole) 영화 득세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알아줄까?” “힘든 세상 풍파를 자식이 아닌 우리가 겪어 참 다행.”

1000만 영화인 ‘명량’과 ‘국제시장’의 이 대사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젊은 세대에게 하고픈 얘기를 콕 집고 있기 때문이다. 두 영화의 성공은 제작 단계부터 중장년층 관객을 염두에 둔 기획영화의 힘이란 해석이다.

설문 응답자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최근 영화계에서 주목할 만한 흐름’을 묻는 질문에 23명(71.9%)이 40대 이상 중장년층의 티켓파워 상승을 꼽았다. ‘명량’과 ‘국제시장’의 총 제작비는 각각 약 200억 원. 관객이 최소 600만 명을 넘어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다. 과거 주요 티켓파워였던 20, 30대를 넘어 40대 이상의 호응이 있어야 가능한 수치다.

투자 배급 상영을 한 손에 쥔 대기업 입장에선 ‘최다 관객의 최대 관람 시기’를 노릴 수밖에 없다. 연말 추석 방학 등 성수기에 개봉할 대형 영화의 경우 기획 단계에서부터 40대 이상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선정한 뒤 다수의 영화관에서 집중적으로 틀어 확실한 흥행을 보장하는 ‘텐트 폴(지지대) 영화’로 삼으려는 것이다. 한 제작자는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경우 앞으로 1000만 영화가 수시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도 다양성 영화지만 ‘CJ 파워’와 중장년층의 호응이 겹쳐 성과를 냈다. 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인 CGV아트하우스가 상영관을 많이 잡아줬기 때문에 479만 명이란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님아…’를 연출한 진모영 감독은 “소규모 다양성 영화에 균등한 상영 기회를 보장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설문 및 인터뷰 참여자 33명 (분야별 가나다순.)

▽감독=김한민(대표작 ‘명량’), 김현석(‘쎄시봉’), 윤제균(‘국제시장’), 진모영(‘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제작사=권병균(시네마서비스 대표), 길영민(JK필름 대표), 김미희(드림캡쳐 대표), 남지웅(트리니티 엔터테인먼트 대표), 박신규(팔레트픽쳐스 대표), 송은주(빅스톤픽쳐스 이사), 심영(팝콘필름 대표), 심재명(명필름 대표), 엄용훈(삼거리픽쳐스 대표), 이우정(제이필름 대표), 이유진(영화사 집 대표), 주필호(주피터필름 대표)

▽수입 배급사=권미경(CJ E&M 한국영화사업본부장), 김시내(AUD 대표), 서동욱(NEW 부사장), 유정훈(쇼박스 대표), 유현택(그린나래미디어 대표), 이상무(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사업부문 상무), 최낙용(백두대간 부사장)

▽홍보 마케팅=김광현(영화사하늘 대표), 신유경(영화인 대표), 윤숙희(이가영화사 대표)

▽평론가=강유정(강남대 교수), 김시무(한국영화학회장), 남동철(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윤성은(영화평론가협회 출판이사), 전찬일(부산국제영화제 연구소장), 정지욱(Re:WORKS 편집장), 편장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영화#영화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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