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 사단’ 미스틱89, 신화는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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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년 1월 1일 07시 00분


윤종신은 장재인을 두고 “요즘 가장 많이 신경 쓰고 있다”면서 “너무 일찍 세련되게 포장돼 다시 야생의 거친 질감을 느낄 수 있는 음악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음악과 가수를 ‘만들고 히트시키는’ 재미를 추구한다는 윤종신은 새해 더욱 큰 ‘재미’를 볼 것 같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윤종신은 장재인을 두고 “요즘 가장 많이 신경 쓰고 있다”면서 “너무 일찍 세련되게 포장돼 다시 야생의 거친 질감을 느낄 수 있는 음악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음악과 가수를 ‘만들고 히트시키는’ 재미를 추구한다는 윤종신은 새해 더욱 큰 ‘재미’를 볼 것 같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 갑오년 새해 프로듀서로 힘찬 도약 꿈꾸는 윤종신

김예림 발굴 데뷔앨범 제작…최고 신인가수 반열에
대중 보는 눈과 마케팅 감각에 엔터테인먼트계 깜짝

1990년대 제작 실패로 빚더미…절망 속 소중한 배움
올해 장재인·김정환 등 소속가수들 첫음반 성공 과제


해가 바뀔수록 ‘윤종신’을 설명하는 말은 길어진다.

가수로 침체기를 겪는가 싶던 2000년대 중반 예능프로그램에서 맹활약하더니, 2010년부터 ‘월간 윤종신’이란 이름으로 매달 신곡을 내며 싱어송라이터로 다시 주목받았다. 2013년 윤종신은 자신의 1인 회사와 다름없었던 미스틱89로 눈부신 성과를 냈다. 김예림의 데뷔 앨범을 제작해 최고 신인가수 반열에 올려놓았고, 언더그라운드에 묻혀 있던 박지윤의 화려한 메이저 컴백을 이끌어냈다. 그래서 그의 이름 석 자 앞에는 이제 ‘미다스의 손’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윤종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미스틱89의 외연을 확장했다. 장재인, 김연우, 뮤지, ‘슈퍼스타K4’ 출신 김정환 등을 잇따라 영입했고 얼마 전엔 이승환의 드림팩토리와 전략적 제휴도 맺었다.

하지만 윤종신의 이름이 더욱 빛나는 것은 미스틱89를 새로운 음악 레이블로서 확고한 위상을 구축한 데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이돌 댄스 음악의 틈바구니에서 참신한 ‘웰메이드 음악’으로 미스틱89는 음악성 있는 레이블이란 이미지를 얻었다. 아이돌 가수들과 분명히 다른 음악을 하면서도 마케팅은 아이돌 기획사 못지않았다.

윤종신은 그래서 이제 모두가 인정하는 ‘잘 나가는’ 음악프로듀서이자 음반제작자로 자신의 자리를 굳혔다. ‘미다스의 손’ ‘히트메이커’ ‘연예계 뉴 파워맨’이란 찬사가 쏟아지지만 윤종신은 정작 “내가 하는 건 별로 없다”며 손을 내젓는다.

“조직(시스템)이 하는 거다. 수익도 아직은 별로 없다. 난 그저 재미를 위해 일한다. 음악을 만들고 히트시키는 재미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윤종신을 엔터테인먼트업계가 높이 평가하고 그 행보를 주목하는 건 그의 ‘대중을 보는 눈’과 ‘마케팅 감각’ 때문이다. 김예림의 성공은 그 한 사례다.

윤종신은 김예림의 말버릇까지 관찰하고 연구했다. “김예림의 목소리로는 뭘 해도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문제는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는 작업이어야 했다. 윤종신은 김예림에게 자신의 곡을 강요하지 않았고, 페퍼톤스 검정치마 등 그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작곡가에게 음악을 맡겼다. SNS를 통해 이 정보를 흘렸고, 대중의 호기심은 높아갔다. 데뷔곡 ‘올라잇’ 티저영상에서 보여준 속옷 차림의 모습은 관심도를 드높였다.

이 같은 김예림의 성공은 미스틱89가 성장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난 가수를 두고, 가장 먼저 대중적 이미지를 고민한다. ‘이 가수를 어떻게 대중에게 소개할 것인가’ 하는 고민. 곡은 그 다음이다. 프로듀싱의 기본 원칙이라면 ‘잃어도 얻는다’는 것이다. 한 번 실패해도 그 다음에 반드시 일으켜 세운다는 신념이 있다. 지금 우리 가수들은 꼭 성공할 사람들이다.”

그러기까지 윤종신은 제작자로서 쓰라린 고통도 경험했다. 1998년 12월 군에서 제대한 후 ‘신스타운’이란 레이블을 만들어 자신의 앨범을 ‘자가 제작’하고, 신인가수 하림의 앨범도 2장 내놨다. 하지만 “20대에 번 돈을 모두 까먹고” 말았다. 빚도 상당해 집도 팔아야 했다.

“좋은 곡과 플레이어(가수)가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어린 나이(29세)에 아무 생각이 없었지. 사람 보는 눈도 없었고. 1990년대에 벌어둔 돈을 다 말아 먹었다. 말 그대로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아니던가. 첫 제작에 실패한 뒤 생활이 궁핍해지고 가슴 속 스스로 견뎌내야 할 갈등도 심할 때 “내가 이렇게 끝나나” 절망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절박함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노랫말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근원이 됐다.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토크쇼, 버라이어티쇼 출연은 그에게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능력”을 갖게 했고, 종잡을 수 없는 대중의 기호를 통찰하는 능력을 길러줬다.

“예능프로그램은 내가 바라보지 않던 사람들을 새롭게 보게 해줬고, 그들에게서 공감을 얻는 방법을 알게 됐다. 사람 만나는 것에 실패해봐서, 이젠 ‘내 사람들’을 보는 눈도 생겼다. 나는 창의력과 현실감 있는 사람들이 좋다.”

갑오년 새해는 윤종신에게 더욱 큰 도전의 해다. 김예림과 박지윤을 ‘유지’시켜야 하고, 장재인 김정환 퓨어김 등 소속 가수들의 첫 음반도 성공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콘텐츠를 잘 만들어내는 프로듀서”를 꾸준히 영입하고 있다는 윤종신은 앞으로 “싱어와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의 순으로, 콘텐츠 생산을 위한 구조적 배열이 잘 된 회사”로 키우겠다는 생각이다.

“비전? 아직은 먼 그림을 보기엔 이르다. 일단 2014년 로드맵상에 있는 걸 히트시켜야 한다. 성공, 매출액, 이런 거보다 미스틱89는 ‘내가 없어도 잘 될 조직’이 됐으면 좋겠다.”

윤종신은 가족을 생각하면 자신은 늘 “잘 못하는 남편, 항상 미안한 아빠”다. 그래도 “쉰 살이 될 3∼4년 후쯤”이 인생의 새로운 전성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올해 큰 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아이가 4∼5학년쯤 됐을 때 아이들과 한 두 달 유럽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면 그때가 내 인생 최고의 전성기일 거다. 갑오년 새해엔 그저 가족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나는 술을 줄이고…. 하하!”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트위터@ziod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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