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데이트의 꽃 팝콘, 다 비우면 풋사랑처럼 허무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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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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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 고소한 영화관 팝콘 스토리 A to Z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올해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도둑들’의 흥행은 이른바 ‘팝콘 무비’의 성공이다. 진지하거나 감동을 자아내는 스토리가 아니라 재밌고 편한 이야기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극장에 가면 손쉽게 사 먹을 수 있는 실제 팝콘도 영화관의 재미다. 찜질방의 구운 계란, 놀이공원의 솜사탕처럼 ‘극장과 팝콘’은 궁합이 잘 맞는다. 언제부터, 왜 영화관엔 팝콘이 스며든 것일까. 팝콘 판매 수익 비중이 커지자 미국에서는 옥수수 대농장을 소유한 사람이 영화 협회의 실권자가 된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다. 그래서 또 다른(Another) 팝콘의 세상, 노랗고 고소한 팝콘의 뽀얀 속내, 즉 맛과 가격, 칼로리, 위생까지 베일에 싸인 팝콘 안의 영화 산업을 들여다본다.》
탄생(Birth). 팝콘은 380세가 넘었다. 가장 유력한 기원설은 1630년 미국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영국인들에게 미국 매사추세추 주 인디언 추장이 선물로 대접했다는 것. 조리사(Chef)는? 쉽게 먹을 수 있는 팝콘이지만 어렵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CGV 팝콘 메뉴 개발자는 프랑스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뢰’ 출신의 이홍철 씨. 프랑스 5성급 호텔 앰배서더에서 근무했던 그가 개발한 ‘시카고 믹스’ 팝콘은 캐러멜이 굳지 않게 2시간 동안 저어야 하는 수제 팝콘이다.

영화 관계자들은 팝콘이 가장 ‘생생’하게 등장하는 영화로 ‘웰컴 투 동(Dong)막골’을 꼽는다. “야아. 눈이 와여∼.” 1950년대 마을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국군과 인민군, 연합군이 대치할 때 수류탄 핀이 가락지라고 생각한 여일(강혜정)이 핀을 뽑는다. 던져진 수류탄이 마을 곳간의 옥수수를 다 튀겨낸다. 1t 트럭 1대 가득 50여 포대의 팝콘이 하늘에 황홀하게 뿌려졌다. 하지만 뽀송뽀송한 팝콘의 속살에는 암호(Encrypt) 처럼 꽁꽁 숨겨진 정보들이 많다.

첫 번째는 열량. CGV와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팝콘 용기 어디에도 열량 표시는 없다. 영화관 스낵 판매점은 휴게 음식점으로 구분돼 영양성분표시 의무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비자시민모임 조사에 따르면 100g당 가장 열량이 높은 제품은 메가박스의 일반 팝콘. 533.6Kcal에 달한다. 성인 여자의 1일 섭취권장량은 1368.2Kcal. 갈릭팝콘 라지 사이즈 한 통과 콜라 한 잔을 마시면 하루 섭취 권장 지방(Fat)의 1.1배를 섭취하니 다이어트의 적이다. 한 움큼, 두 움큼 먹다 보면 내 몸이 팝콘처럼 부풀 수도 있으니 주의할 것.

자정이 가까워 극장에 가면 커다란 솜 풍선 덩이 같은 쓰레기(Garbage) 봉투를 발견하게 된다. 하루 판매되는 양의 절반가량이 눅눅한 팝콘이 돼 폐기된다. 창문 하나 없이 햇볕이 들지 않는 극장의 실내 위생(Hygiene) 담당자들에겐 관객들의 군것질거리가 단연 골칫거리다.

그럼 이쯤에서 퀴즈. 국내에서 팝콘이 없는 영화관을 찾을 수 있을까. 영화 관계자는 불가능(Impossible)이라고 입을 모은다. 1963년 ‘화양극장’으로 문을 연 실버극장, 서대문극장도 극장을 유지하기 위해 팝콘 대신 가래떡을 팔았다. 젊은층과 어르신(Junior-senior)들이 함께 찾도록 서울시가 청춘극장으로 운영할 때는 봉지에 담긴 팝콘을 팔기도 했지만 가래떡의 인기를 따라가지 못했다.

미국 대공황 시대에 값싼 국민 간식으로 퍼진 팝콘은 1948년부터 미국 전체 극장 중 85%의 극장에서 판매했다. 한국(Korea)에서 팝콘은 1980년대 판매되기 시작해 1990년대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성업으로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극장의 연인들은 팝콘을 사이에 두고 사랑(Love)이 싹트기도 한다. 영화 ‘타짜’에서 광렬(유해진)과 세란(김정난)의 첫 데이트. 둘은 극장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본다. 하지만 광렬의 얼굴은 가득 심통이 나 있다. 그러나 세란의 손에 들려 있는 팝콘. 한 줌씩 팝콘을 먹으면서 첫 데이트의 기분을 낸다.

하지만 팝콘이 제목에 있는 영화(Movie) ‘팝콘과 스테이크’(1992년)와 ‘팝콘’(1993년)은 달콤한 맛이 아니다. ‘팝콘과 스테이크’는 비밀경찰이 개시했던 폭파작전의 암호명이었고, ‘팝콘’은 영화과 학생들이 주인공인 공포물이다. 달콤한 로맨스 장르를 기대하고 스크린 앞에 앉는다면 매점에서 산 팝콘 용기에 쏙 얼굴을 파묻을 수도 있을 듯. “노(No), 오(Oh)! 마이 갓”.

한 창업 컨설턴트에 따르면 본사 직영으로 운영하는 한 멀티플렉스 극장 매점의 한 달 순수익(Profit)은 600만∼900만 원이다. 메가박스는 최근 3년간 극장 매점 매출이 전체 매출의 15.7%를 차지했다. CGV는 매출의 10%가량이 매점 수익이다. 시중가의 7.5배, 원가의 12배 이상으로 비싼 가격으로 영화관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이 효자가 때로는 싸움(Quarrel)을 일으킬 수도 있다. 영화관에서 팝콘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때론 옆 사람에게는 ‘바윗덩이 굴러가는 소리’만큼 크게 들릴 수도 있다. 이 소리에 옆 사람이 ‘짜증지수 100’에 도달하면 어떨까. 만약 옆 사람이 ‘콘 에어’ 등에서 연쇄 살인범으로 나온 스티브 부세미라면 당신의 옆구리가 온전하지 않을 수도…. ‘우리도 사랑일까’ ‘그린 호넷’에 출연한 배우 세스 로건은 유난히 씹는 소리가 시끄러울 듯싶다. ‘우걱우걱’ ‘와구와구’….

경쟁작이 쉬지 않고 나오는 영화계. 팝콘의 라이벌(Rival)은 없을까.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주 메뉴는 오징어와 나초, 핫도그 등. 하지만 냄새가 강한 오징어나 와자작 씹어 먹는 나초에 비해 씹는 소리(chewing Sound)가 상대적으로 작은 팝콘이 매출의 30%, 단연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고소한 맛의 팝콘을 위협(Threat) 하는 제품은 오히려 신개발 팝콘. ‘바비큐맛 팝콘’에서 ‘더블 초콜릿 팝콘’까지. 기름과 소금을 전혀 넣지 않은 ‘플레인 팝콘’은 의자 아래(Under your seat)에 떨어진 팝콘 부스러기처럼 오히려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차가운 팝콘을, 멕시코 사람들은 매콤한 살사를 뿌린 팝콘을 즐겨 먹을 정도로 입맛은 각양각색(Various)이니까.

변하는 것이 팝콘의 인기뿐이랴…. 결혼 전 아내(Wife)가 팝콘을 흘리는 것도 예뻐 보였다. 하지만 이제 옆에서 낄낄거리는 모습을 봐줄 수 없다면….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해결사 류승룡을 고용해 아내를 유혹하라고 해야 할까? “예쁜 사모님, 팝콘 흘리는 손마저 섹시하십니다.” 손도 사모님도 그대로인데 나의 사랑은 식어버리게 한 요인(X-factor)에 씁쓸해질 수도 있겠다. ‘걸리버 여행기’ ‘쿵푸 팬더’ 등에 나온 잭 블랙은 아마도 관객과 가장 맛있게 팝콘을 같이 먹어줄 배우가 아닐까. 그가 옆자리에서 쉬지 않고 수다(Yabber)를 떨어도 얄밉지 않을 듯.

호랑이, 사자, 코끼리, 원숭이…. 동물원(Zoo)의 골라 보는 재미만큼 요즘 팝콘도 다양하다. 하지만 팝콘은 골라 먹으면서 영화는 ‘1000만 영화’만 편식하면 배탈 나겠지! 아무리 요즘 영화들의 스크린 확보가 ‘정글의 법칙’대로 진행돼도 관객은 고상한 취향을 잃지 말아야겠다.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영화#팝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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