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의 오만을 겨냥한 정지영 감독 “한국 판사들 몹시 불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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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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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석궁테러사건 다룬 ‘부러진 화살’ 19일 개봉

정지영 감독(왼쪽), 영화 ‘부러진 화살’ 포스터
정지영 감독(왼쪽), 영화 ‘부러진 화살’ 포스터
정지영 감독(65)은 1990년대 한국 영화계를 관통하는 화살이었다. 그가 연출한 ‘남부군’(1990년)은 적으로만 규정했던 광복 이후의 사회주의자들에 대해 “그들도 사람이었다”는 메시지로 우리 사회의 선입견을 정조준했다. ‘하얀 전쟁’(1992년)에서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년)에는 외국 영화에 맹목적으로 물든 청년세대에 대한 일침을 담아 파장을 불렀다.

1999년 개봉한 ‘까’를 마지막으로 연출을 접었던 정 감독이 문제작 ‘부러진 화살’(19일 개봉)로 돌아왔다. 영화는 2007년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가 서울고법 민사2부 박홍우 판사를 상대로 일으켰던 ‘석궁 테러’ 실화를 담았다. 당시 김 교수는 대학 재임용 탈락과 관련한 소송에서 패소하자 박 판사를 석궁으로 쏜 혐의가 인정돼 4년형을 살고 지난해 초 출소했다.

판결 내용과는 달리 영화에 담긴 비판의 화살은 김 교수가 아닌 사법부로 향한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 감독은 작품을 만든 계기를 묻자 “우리 모두가 이 사건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사건의 진실을 모르더라”며 운을 뗐다.

영화는 사법부가 김 교수의 행위를 사법부의 절대적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이를 응징하기 위해 과도한 판결을 내렸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 측은 재판부에 박 판사를 증인으로 채택할 것, 박 판사의 옷에 묻은 혈흔이 그의 것이 맞는지 검증해 줄 것, 재판 과정을 녹음해 줄 것 등을 요구하지만 사법부가 묵살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괘씸죄에 걸린 김 교수가 부당한 재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담았죠.”

정 감독은 김 교수 사건을 다룬 르포 서적 ‘부러진 화살’(서형 지음)에 꼼꼼한 취재를 더해 1년을 들여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영화의 대부분은 사실입니다. 특히 재판 과정은 모두 공판기록에 입각해 만든 것이죠. 교도소를 찾아 면회하고 수십 번의 편지를 주고받아 보니 김 교수는 ‘또라이’가 아닌 원칙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석궁으로 판사를 위협하기는 했지만 쏘지는 않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했어요.”

정 감독은 “사법부가 사건 현장을 조사하기도 전에 ‘사법부에 대한 테러’라고 단정했다”며 비판을 이어갔다. “이건 법치주의에 어긋나죠. (사법부는) 이 말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재생산했어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한 개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에 분노해야 합니다.”

‘남부군’에 출연했던 안성기는 김 교수 역할을 맡아 정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처음에는 저예산 영화인데 비싼 배우인 안성기를 쓸 수 없겠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시나리오를 본 안성기가 김 교수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다고 했어요.”

한국 영화계에서 감독은 50대만 돼도 노장 소리를 듣는다. 감각이 떨어진다며 40대 후반이면 물러나는 조로(早老) 현상이 만연해 있다. “이번 작품이 대중적으로 성공해 투자자들이 50, 60대 감독을 다시 찾아주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몸은 늙어도 감각은 늙지 않습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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