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 A 개국 특집/Moments]새 장르-프로그램 개척 방송史 큰 획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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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뿌리 DBS 18년

1963년 4월 25일 동아방송(DBS)의 첫 방송 모습. 동아일보 DB
1963년 4월 25일 동아방송(DBS)의 첫 방송 모습. 동아일보 DB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동아방송입니다. 동아의 첫 뉴스를 전해드리겠습니다.”

1963년 4월 25일 오전 5시 30분, 동아방송(DBS)이 첫 전파를 탔다. 뉴스가 개국 첫 멘트로 나간 것은 한국 방송사상 전례가 없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동아일보가 방송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것은 4·19혁명 직후인 1960년 12월. 고조된 민주화 흐름에 맞춰 언론의 공익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시사와 보도에 강점을 보인 동아방송은 개국 후 1년도 안돼 청취율 1위의 방송으로 떠올라 여론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는 군사정부와 갈등 관계에 놓이는 원인이 됐다.

동아방송의 ‘앵무새’는 한국 최초 고발 성격의 사회비평 방송칼럼. 박정희 정부의 실정을 풍자해 정권의 주요 경계 대상이 됐다. 1964년 6월 비상계엄령이 선포됐을 때는 반국가단체 활동의 찬양고무, 내란의 선동선전, 정부비방 등의 혐의로 제작 간부들이 회의 도중 연행돼 군법회의에 회부되기도 했다.

1963년 10월 15일 대통령선거 투표 때는 공화당 박정희 후보가 동아방송 마이크에 대고 “동아방송, 거짓말방송이나 하지 마시오”라고 발언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재야와 민주세력에 우호적인 동아방송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토로한 것이다. 정권과의 불화는 1975년 광고탄압사건으로 표출됐고, 전체 광고의 90% 이상이 사라지면서 동아방송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결국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은 언론통제를 위해 1980년 11월 14일 언론통폐합을 발표했다. 개국 이래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끼치면서 군사정부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동아방송은 강제로 문을 닫았다. 신군부 세력은 동아방송을 KBS에 넘겨줬고 이는 KBS2로 재편됐다.

동아방송은 18년의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KBS MBC 등 기존 방송국들이 시도하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와 프로그램 포맷을 개척해 한국 방송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요백일장’은 각 지역 대표를 뽑아 연말에 장원 선발대회를 여는 형식으로 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의 효시가 됐다. 김세레나 김부자 등이 가요백일장을 거쳐 국민스타로 성장했다. 1966년 방영된 동아방송의 ‘기정수(寄正洙) 시리즈’는 국내 첫 수사물로 높은 인기를 얻었고, 이후 TBC는 ‘특별수사반’ 같은 유사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또 ‘3시의 다이얼’ ‘0시의 다이얼’ 같은 최초의 DJ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나운서만 마이크를 잡는다”는 기존 통념을 바꾸기도 했다. ‘3시의 다이얼’은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청취율 1위에 올라서는 이변을 낳았다. 최동욱 라디오서울코리아 대표(74)는 “DJ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고 하니까 두 말 않고 ‘그래, 한번 해봐’라며 흔쾌히 밀어줬다”며 “동아방송의 저력은 다른 방송사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과감히 시도하는 데 있었다”고 회고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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