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들의 6·25이야기 귀담아들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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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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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복원 필름 등 담은 다큐 ‘60년전, 사선에서’ 박성미 감독

박성미 감독은 “할아버지들이 인터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다. 일반인들이라면 펑펑 울 법한 대목에서도 절제하시는 것을 봤다”고말했다. 변영욱 기자
박성미 감독은 “할아버지들이 인터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다. 일반인들이라면 펑펑 울 법한 대목에서도 절제하시는 것을 봤다”고말했다. 변영욱 기자
“노인분들이 술 마시고 6·25전쟁 때 이야기를 하면 젊은이들이 잘 안 들어줘요. 그분들에게는 그게 상처예요.”

씨너스 서울대 등에서 24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60년 전, 사선에서’를 연출한 박성미 감독(42)은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이 영화를 보고, 그날 저녁만큼은 어르신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60년 전, 사선에서’는 2009년 발굴된 영화 ‘정의의 진격’ 필름을 디지털로 복원한 뒤 참전용사 박형수 김종환 씨 등 33명의 인터뷰를 삽입했다. ‘정의의 진격’은 한형모 감독 등이 1951년 종군기자로 나서 직접 촬영한 장면으로 구성한 137분짜리 다큐멘터리로 1954년 태국에 수출하기도 했다. 박 감독은 “‘정의의 진격’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며 “그때 사용됐던 고유의 선전 어구 등 당시 톤을 그대로 살렸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이번 영화의 감독을 맡게 된 계기에 대해 “한 번쯤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며 “(천안함 폭침사건 등과 같은 예민한 시기에) 이 영화로 인해 누군가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서울여대 사학과를 나와 방송사에서 잠시 근무한 뒤 1994년 일본으로 건너가 NHK 다큐멘터리 워크숍에서 6개월 동안 다큐 제작기법 등을 공부했다. 그는 1998년 무국적으로 살아가는 재일동포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입국금지’를 연출한 뒤 10여 년 동안 여러 작품을 제작해왔다.

2004년 ‘나는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는 책을 출간했던 박 감독은 예전에는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큐멘터리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그가 다큐멘터리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놓치고 있지만 고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제시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고급 지식을 대중화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역할”이라며 “다큐멘터리를 통해 관객들이 지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일본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

이제 여든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들의 인터뷰는 검은색 천을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묻자 박 감독은 “출연하신 할아버지 대부분이 장교가 아닌 사병 출신으로 지금까지 그분들은 제대로 된 예우를 받아본 적이 없다”며 “최대한 예우를 갖춰 제대로 된 세트장에서 장군처럼 멋있게 찍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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