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김마스타]언더그라운드에 찾아온 가을 ‘홍대잡상’

  • Array
  • 입력 2009년 10월 11일 13시 44분


김마스타<꽃이 토하다>

예로부터 나라가 궁핍하면 가장 먼저 삭감되는 분야가 예조(禮曹)쪽이었다고 한다.
최근 홍대 주위에서 만난 친구들은 대부분이 음악가나 미술가다. 일주일에 일곱 번을 만나도 모자란 듯이 만나 담소를 나누는 이유는 이 사람들이 얼마나 외로움과 고독함에 휩싸여 사는지를 반증한다.
조선의 뒷골목을 쏘다니며 민초들과 고등어 한 마리 사이에 두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었던 화가 장승업도, 나귀에 실려 삼선교 다리를 건너다니던 최고의 기생 홍단이도 답답한 마음을 적셔내려 할 때면 어김없이 '마포 마실'을 택하곤 했다.
그렇다. 나 역시도 이들처럼 마포 홍대 주위를 쏘다니는 음악인이다. 지금도 여전히 시대와 장소를 불문한 유행이 계속되고 있고, 때론 25년 주기로 뒤바뀐다는 서울의 유행과 사조의 바람이 다름 아닌 마포에 있다고 선언해도 부디 과장이라 욕하지 말길 바란다.
며칠째 홍대 인근에서 보고 있는 에릭 클립턴 자서전의 뒷날개에는 이 뮤지션의 인생을 관통하는 한 마디로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Sex and Drug and Rock'n Roll"
단순함이 무한가치를 가지는 이 시대에 더 할 나위없는 타이틀이 아닌가! 그것도 밴드하는 이들에게 이 같은 일탈은 단순한 립서비스에 그칠지라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 조선시대를 관통한 마포의 힘?
이전보다는 인디 밴드들이 앨범을 내기도 수월할 뿐 아니라 자신의 꿈을 펼칠 다양한 기술과 무대도 늘어났다. 주변에 있는 작가들도 모두 가을과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평범한 예술가 타입은 앨범작업에 주력하지만, 대개 밥벌이가 될 만한 공연들을 물색하는 것이 숙명이다.
요즘은 불문율처럼 EBS<공감>이나 MBC<라라라>에서 이름을 높이고 대형 음악페스티발에 초청되면 기본타율은 충족한다고 하는데, 그것에 매달린 레이블들만 이미 수십여 개에 이른다. 가까운 일본시장에 비하면 1/100도 안된다고 하는데 그것마저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다.
먼 나라 얘기 같은 해외시장 진출도 박진영처럼 요란스럽지는 않더라도 몇 명만 길을 내준다면 그럴싸한 그림이 그려질지 모른다. 그런 포부도 없이 어찌 예술을 논할 수 있을까.
그러나 현실 속 이 가을에는 자라섬이나 그랜드민트 같은 소형 페스티발이 전부다. 아는 사람만 간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무대에 서기 위해 뛰는 꽃(젊은 예술가)들은 부지기수다. 적어도 '아는 형이나 동생이라야 (무대에) 올라갈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게라도 무대가 있어야 밴드 붐과 인디씬이 형성될 테니 잠자코 있을 수밖에.
예전같지 않다, 음악으로 먹고 살기가. 그리하여 이 가을에 다시금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한다. 홍대로, 주차장 골목 그 어느 술상으로.

● 홍대의 가을, 홍대 앞의 술집들
홍대 모퉁이에서 만난 풍경.
홍대 모퉁이에서 만난 풍경.
홍대는 마름모꼴로 축구골대같이 생겼다고 보면 된다. 우린 공연이 없을 때는 다들 삼삼오오 모여서 홍대의 가을을 집어삼키듯이 잔을 드는데 몇 개의 포인트 지점이 있다. 대중매체를 타고 나간 그런 지점은 더 이상 우리의 발길을 유혹하지 못한다.

각자 음악적 영업을 하는 시간 외에는 대부분 이런 중요 포인트에서 만나게 된다. 사람들은 감탄한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구료…"

만족도는 대개 10점 만점에 9점 이상이다. 가끔 홍대의 랜드마크라 불리는 곳만을 찾는 이들을 적잖게 볼 수 있다. 유명한 뮤지션이 어디서 누구를 만나는지에 대한 관심 탓이다. 그것이 맛집 찾는 법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일단 사람이 많은 집이 좋은 집이라는 생각은 이 동네에서는 무시해도 된다. 우리끼리는 이런 집을 '뜨내기장사'라고 하는데 그런 곳일수록 기대치를 현저히 떨어뜨린다. 대로변은 일단 기대를 접는 것이 속 편할지 모르겠다(앞으로 이런 주요 포인트에 관한 제보도 가끔 토해 내겠다).

홍대전철역에 내리면 대부분 좌우로 나뉘어서 움직이게 되는데 좌측은 중고생들 구역이라고 보면 된다. 뜨내기장사를 하는 집들이 연이어 붙어 있다. 왁자지껄해서 잘 안 가게 되는 동네다. 두부를 자르듯이 사등분으로 홍대라는 골대를 자를 수 있는데 우측은 20~30대들이 주로 가는 단골집들이 많다.

골목골목에 가게들이 작은 집은 두 평부터 큰집은 백 평이 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손님이 맘에 안 든다고 쫓아내는 이모부터 시작해서 손님보다 더 빨리 취하는 사장님에,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그런 희귀한 복장을 한 주인장까지…, 홍대에는 기이한 풍경들이 지천이다.

● 음기 충천한 홍대의 가을

'손님이 왕'이라는 격언은 오래된 거짓말이다. 오만가지 상의 주인들과 그 주인을 둘러싼 외계인들을 조심해야 한다. 성깔 있는 집들이 많아서 자기 타입이 아니면 반시간도 못 견딜 집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이 모든 이들의 공통점은 당인리(홍대의 옛지명 교동이라고도 했다)의 땅기운에 영향을 받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음기가 충천하고 춘추전국시대마냥 예전 홍대 앞을 채웠던 작업실들이 가게로 바뀐 경우가 많고 마포라는 지역색 덕분인지 다들 초면임에도 마치 외국인을 보는 것 같이 낯설고, 때론 섭섭하기조차 하니 말이다.

홀로 살아남아 그 어떤 삶과 예술의 과업달성을 위해서 뒤돌아볼 틈도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친구가 필요한 모양이다.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해 오늘 당장 홍대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 홍대앞은 '나인투 파이브(9to 5)'의 일반인들은 지각하지 못하는 세밀한 감성이 그 주민들을 감싸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술상 앞에서의 진심은 아래의 사진 한 장으로 대변한다.

필자 : 김마스타

칼럼 더보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