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첫 출발땐 개봉관 못잡아 ‘허덕’

  • 입력 2009년 5월 19일 02시 55분


2000년 총제작비 6500만 원으로 만든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서울 5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6만978명의 관객을 모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0년 총제작비 6500만 원으로 만든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서울 5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6만978명의 관객을 모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국 독립영화 제작환경 열악

佛예술영화 스크린 30% 넘어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는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은 영화다. 2000년 개봉한 류 감독의 장편 데뷔작 ‘죽거나…’는 장선우 감독이 ‘나쁜 영화’를 찍고 남겨준 16mm 자투리 필름을 사용해 찍었다. 총제작비는 6500만 원. 고졸 출신의 27세 젊은 감독이 재기발랄한 액션 속에 담아낸 사회비판이 평단과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서울에서 5개 스크린에 걸려 6만 978명이 관람했다.

류 감독도 양 감독처럼 단편영화 만들기에 몰두하던 영화청년이었다. 이후 주류 시장에서 독특한 액션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있는 류 감독은 양 감독의 미래를 예상해 보게 만드는 선험자다. ‘죽거나…’는 조만간 ‘007-퀀텀 오브 솔러스’의 마크 포스터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할 예정이다.

‘워낭소리’ ‘낮술’ ‘똥파리’ 등 최근 작은 영화들의 성과가 낯설게 느껴지지만 국내 영화계에서 작고 강한 영화를 만드는 움직임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대중의 시야에 이제야 이런 영화들이 들어왔을 뿐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작은 영화 만들기는 몇몇 영화의 성공과 상관없이 ‘배고프고 험한’ 일이다. ‘워낭소리’ 감독은 술자리에서 “100만 관객”을 호언했다가 “사정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고 발끈한 제작자와 격한 말다툼을 벌였다. ‘워낭소리’는 입소문을 타기 전에 상영관을 잡지 못해 단 7개 스크린에서 개봉했다.

일본의 환경은 한국과 대조적이다. 메이저 영화사가 직접 제작보다 부분 투자와 배급에 집중하기 때문에 다양한 스타일의 독립제작사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영화를 만든다. 스타나 물량 공세를 앞세운 대작 프로젝트보다 다채로운 성격의 소품이 시장의 주류를 차지한다. 1997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우나기’와 이탈리아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하나비’는 모두 이런 환경에서 만들어진 독립영화들이다.

프랑스에서는 독립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아트하우스’가 전체 영화 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는 스크린이 전체 6%가 넘는다. 미국 선댄스 영화제는 1985년 만들어진 뒤 작고 알찬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최대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바톤 핑크’, ‘저수지의 개들’, ‘원스’ 등이 모두 이 영화제가 발굴해 배출한 작품들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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